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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취업, 회사 이야기

프랑스 회사 취업 후 한달.

취업 후 벌써 한달이나 지나버렸다.

그 동안 내가 경험한 것들을 간략하게 적어 보겠다.


1. 입사 첫 날

당연히 긴장되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9시 정각에 회사에 도착했는데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두번째로 면접을 봤던 매니저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공교롭게도 내 자리는 본부장과 매니저 사이였다(...)

뭐...언젠간 바꿀 날이 오겠지 하고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는 iMac이 준비되어 있었다.

'애플 제품은 안 써봤는데...'

집에서 와이프 맥북 몇 번 만져본 적은 있지만 사실 그게 다라서 파일을 클릭 한 후 엔터(Return 키)를 쳤더니 파일이 열릴 것이란 기대완 달리 이름 바꾸기 모드로 변해서 내가 완전 신세계에 와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이랑 가볍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HR팀으로 향했다.

HR팀은 전혀 다른 건물에 있었다.

잠깐 내가 취업한 회사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직원이 약 천명 인데 파리 건축법 상 대부분의 건물은 6층 이상 지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가 파리 10구역 여기저기 나눠져 있는 모양이다. 멀어 봤자 한 블럭 차이라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길거리에 회사 동료들이 보이므로 서로 인사하느라 시간이 다 간다.

암튼, 그래서 HR팀에 갔는데, 처음에 나를 면접 봤던 여직원이 보였다.

그 때 차갑고 날카롭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고 나도 유일하게 그 사람만 구면인지라 더 반갑게 느껴졌다.

HR팀 매니저(인 것 같음)과 만나서 관련 서류 제출, 계약서 작성 등을 하러 미팅룸으로 들어갔는데, 매니저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 여직원이 같이 들어왔다.

매니저가 나에게 계약서를 읽어보라고 건넸는데 어짜피 불어로 작성되어 있어서 애초에 읽은 생각은 안하고 숫자만 확인 했다.(연봉, 연차 등)

광속으로 싸인을 마치고, 각종 복지 혜택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한번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4주 연차가 기본인데 이 회사는 거기에 RTT라는 추가 휴가가 존재한다.

그래서 37일! 37일! 37일! 

믿기지 않는 수치다. 한국 회사에서 2년을 넘게 다녀야 갈 수 있는 휴가다.(그마저도 다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문이다.)

당연히 휴가를 1년 내에 안 쓰면 돈으로 환급된다.

또 내가 외국인이므로 내가 원한다면 회사에서 사설 불어 학원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난 어짜피 이민자이므로 국가에서 제공하는 불어 교육 이수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그 날 저녁에 와이프에게 자랑스럽게 계약서를 보여주고 안 사실인데, 내 계약서에 내 이름 철자가 잘 못 돼 있었다.

설레발 치느라고 이름도 제대로 안 읽은 것이다.



2. 동료들과 만남

그렇게 바보 같이 틀린 이름이 적힌 계약서에 당당하게 싸인하고 내 부서로 돌아오니

이제 직원들이 출근해서 얼추 자리가 다 채워진 것 같았다.

내가 속한 팀은 쉽게 설명하자면 IT팀인데 크게 하드웨어팀과 소프트웨어팀으로 나눠진다.

생각 보다 직원들 연령대가 높아보였다.


뭔가 IT팀이라고 한국인 입장에서 생각하면 대부분 20 ~ 30대 많으면 40대 초반?! 인데 대부분 40대가 넘어 보였다.

하드웨어팀도 있다보니 사방에 컴퓨터 관련 용품들이나 맥북, 아이폰 박스 들이 쌓여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건 알고들 있어서 어떤 게임을 좋아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질문을 받으면서 다른 직원들의 모니터를 주욱 훑어 보니 젤다의 전설, 롤, 도타, 와우 등을 플레이한다는 걸 한 방에 알 수 있었다.

나를 마지막으로 인터뷰 했던 본부장님 같은 경우는 디아블로가 프로급이라고 한다.

나는 디아블로를 잘 모르지만, 본부장님에 의하면 한국에 엄청난 플레이어들이 많다고 한다.

나는 킹오파를 전공(?) 했다고 운을 띄웠고, 다들 '오오' 하는 소리로 내가 하는 말을 열씸히들으시더라.

한국에서 킹오파의 인기가 시들해서 요즘은 철권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 갑자기 본부장님이 내 말을 자르면서 본인이 킹을 하는데 웬만한 애들은 아예 일어나지도 못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때, 언젠간 우리 팀에 피바람이 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선량한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발 누군가가 킹오파를 들고 오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봐주는 것 따윈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여성 카운터 스트라이커 프로 게이머가 우리 회사에 있단 얘기도 들었다.


아, 맞다. 취업 얘기 해야지.

아침 마다 커피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시는 흑인 아주머니도 계시는데 항상 아침 마다 밝게 인사를 해 주신다. 나랑은 말이 잘 안 통해서 봉주르!, 싸바?만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엔 자폐아가 온다.

와서 분리수거를 하거나 이면지 등으로 우리가 사용할 노트 등을 만든다. 끝으로 청소까지.

혼자 있는 건 아니고 국가(일 거라고 생각함)에서 나온 보호자 같은 분이 계신다. 전반적으로 그 자폐아의 행동을 감독한다.

자폐아는 규칙적으로 어떤 소리를 반복하는데 이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은근히 집중이 잘 된다.

가끔씩 내가 다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잔을 치워버려서 새 커피잔을 가져와야하지만 좋은 친구다.


3. 처음 사용하는 맥, 불어 키보드

여기선 전부 맥을 사용한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난 애플 제품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가뜩이나 프랑스에서 첫 출근이라 긴장되는데 안 써본 컴퓨터 앞에 앉으니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맥 단축키 부터 좀 살펴 보자'

라는 생각에 사파리를 키고 검색어를 치려는데 아뿔싸.

키보드가 불어 키보드인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맥 단축키는 cmd + space이다. 언어 바꾸기.

그런데 그게 프랑스 맥 체제에선 spotlight 단축키인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영어 자판이랑 배치가 미묘하게 다르다.(일단 qwerty가 아님)

'그래 맥 제어판에서 키보드 부터 추가하자'

어떻게 제어판 까진 열었는데 언어를 어떻게 바꿔야하는 건지...

눈뜬 장님 처럼 더듬더듬 어떻게 해서 언어도 추가하고 나중엔 아예 운영체제 기본 언어를 바꿔버렸다.

그렇게 한 몇시간 지나니 지원팀에서 오더니 영어 자판 키보드와 헤드폰을 주더라.

헤드폰은 회사가 여기저기 나뉘어져있다 보니 화상미팅 할 때 쓰라고 준 것이다.


그리고는 서포트팀 직원이 나에게 영어로 물었다.


서포트팀 : 더 필요한 거 없어?


나 : 공책이랑 볼펜 받을 수 있을까?


서포트팀 : 아, 그거 저기 저 친구한테 가봐.


나 : (저기 저 친구한테 가서) 안녕, 서포트팀한테 얘기 듣고 왔는데 공책이랑 볼펜이 필요한데...


그 친구 : 아 공책?! 여기 있어.


나 : 고마워. 그런데 볼펜은?


그 친구 :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건 내 담당이 아냐. 저기 보이는 흑인 마담에게 물어봐. 그 사람이 펜 담당이야.


나 : (뭐?!) 그, 그래;;


나 :  (흑인 마담에게 가서) 안녕하세요, 저기 저 친구한테 얘기 듣고 왔는데 당신이 볼펜을 관리한다고 해서...


흑인 마담 : 아! 볼펜? (볼펜들을 꺼내며) 여기 색색별로 종류가 많아. 무엇을 원하니?


나 : 그냥 검은색 하나면 됩니다.


그렇게 공책과 볼펜을 받아가지고 왔다.

공책과 볼펜을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니...


4. 의사소통?!

기본은 당연히 다들 불어로 한다.

그런데 나 때문에 특히 내가 속한 팀은 다들 영어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있으므로 나는 가능한 불어로 말하려고 하고 상대방은 가능한 영어로 말하려고 한다.

어짜피 회사에서 업무 관련 이야기들을 하니 영어로 하든 불어로 하든 문맥상 대부분 이해는 가더라.

처음에는 불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이야기를 해와서 잘 이해가 안 됐는데 한 2주 지나니까 대부분은 금방 유추가 된다.

아마 상대방도 내가 한국어 억양이 강한 영어를 해서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와이프랑 있을 때는 잠깐 불어로 얘기하다가 내가 답답해서 그냥 영어로 말하고 말았는데 회사에 다니다 보니 맨날 옆에서 듣는 말이 불어다 보니 조금씩 불어 실력이 발전은 하는 것 같긴 하다.


5. 점심 시간

한국에 있을 때 직장인의 점심 시간은 팀별, 또는 또래별 또는 직급별 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한 음식점에서 한두가지 메뉴로 식사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긴 그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다.

같이 먹는 멤버도 자주 달라지고 그냥 컴퓨터 앞에서 먹는 직원도 많고 혼자 나가서 공원에서 책 읽으면서(광합성) 샌드위치를 먹는 직원도 있다.

메뉴도 한국에 비해서 가벼운 편에 속하는 음식들이 많더라.

내가 한국에 있을 땐 점심을 먹고싶은 대로 왕창 먹고 한 30분 정도 커피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면서 직원들이랑 노닥거리곤 했는데 여기선 조금 덜 단체적인 분위기라고 해야하나.

개인적으론 점심 식사는 한국 처럼 다 같이 하는 게 좋은데 여긴 점심 시간 식사도 다들 제각각이라서 가끔 심심하기도 하다.

아, '티켓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회사에서 점심 식대 8유로(현재 환률로 한화 약 1만원)를 준다. 여기에 내 돈 약 2유로 정도가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튼 느낌 상으로는 100% 회사가 지불하는 것 같다 ㅎㅎ

나는 보통 레바논, 멕시코, 일본 음식을 주로 먹는데 다들 8유로는 넘는다. 가끔 그냥 빵집에 가서 샌드위치를 사먹는데 이 때는 오히려 돈이 남는다. 만약 7유로를 먹는다면 남은 1유로는 음식점 쿠폰으로 바꿔준다. 나중에 이 음식점에 다시 방문했을 때 제시하면 그 액수대로 차감되는 방식이다.


6. 분위기

뭐랄까 기본적으론 분명 차분한데 누가 한명이 농담을 하기 시작하면 한명 두명 끼어들어들더니 급기야 샴페인도 따기도 한다.(항상 샴페인이 사내 냉장고에 대기중 이상무!)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 업무를 본다거나(그냥 사원임)

딸이 아직 어려서 자주 재택 근무를 하는 직원도 있고

인턴이 2주 휴가 내고 미국 여행을 가고

가끔 와이프와 아들과 장모님(응?!)을 초대해서 회사 직원들과 간식을 먹는 등

라스베가스 아니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회사 직원들은 전부 맥북과 아이폰을 받게 되는데 나도 맥북을 받으면 경치 좋은 회사 옥상이나 사내 테라스에서 코딩을 할 수 있다.


옥상 경치가 어마무시하게 좋다.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상의를 이메일을 통해서나 구두상으로나 자주하는 편이다. 하다 못해 json 파일을 줄 때도 나한테 어떤식으로 구조가 갔으면 좋겠냐고 항상 물어본다.

내가 비전공자이다 보니 한국에서 기초적인 부분에 대해 '그것도 몰라?!'라는 식의 비아냥을 듣거나 무시를 당해서 다른 개발자랑 대화할 때 주눅이 들었던 적도 종종 있었는데 다행히 이곳 동료들은 '다른 건 몰라도 프론트단은 너가 제일 잘하니까 너한테 맡길거고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라. 모르는 건 언제든지 물어보고' 라는 식이라 편하게 대화가 가능하다.

 

7. 야근?!

첫 출근날이었나 둘째 날이었나...혼자 업무 파악도 하고 공부도 좀 한다고 오후 7시 30분에 퇴근한 적이 있는데 회사 뿐만이 아니라 건물 자체가 전부 문을 닫아버려서 힘들게 탈출(?)을 한 적이 있다.

유일하게 매니저 전화번호만 아는데 전화해서 어떻게 회사를 탈출하냐고 묻는 것도 실례인 것 같아서 어떻게든 혼자 나갈 방법을 찾아봤는데, 자동 경비 시스템이 사방에 있어서 뭐 버튼 하나 누르는 것도 너무 떨리더라. 실수로 잘 못 눌러서 경비 업체 오면 말도 안 통할까봐 버튼도 못 누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이 때 머리속엔 왜이리 '세친구 추석편'이 생각나던지 ㅋㅋㅋ 어찌됐는 비상구 하나를 찾아내서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다음 날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탈출한 무용담을 늘어놓으니 돌아오는 답변은 '그 늦은 시간까지 뭐했니?'였다. 7시 30분이 늦은 시간이구나.

그 이후 부턴 남들 퇴근할 때 같이 한다. 불어 잘 할 때 까진 늦게까지 일하면 안되겠다.(그게 아니고 야근을 하질 말아야지)

일단 회사측에서도 직원들이 야근을 하는 걸 싫어한다. 추가 수당을 줘야하기 때문이다.


한달 정도 다른 직원들의 퇴근 시간을 지켜본 결과, 대부분 5시 40분쯤 되면 사람들이 일어나서 떠들기 시작한다. 가끔 바쁜 직원들은 7시까진 있더라.

이 곳에서 3년을 일한 직원에 말에 의하면 3년 동안 최고로 늦게 일해본 게 밤 10시까지라고 했다. 누가 실수로 db를 날려먹어서 그거 복구하느라 딱 한번 밤 10시까지 한게 전부라고 한다.

내가 한국 야근지옥의 실상을 말하니 다들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일을 하면 능률도 떨어지고 머리도 잘 안굴러가서 효율적인 코딩을 못 하지 않아?'

'뭐? 야근을 그렇게 하는데 추가 수당도 안 준다고? 다른 회사 가면 안돼?'

한 직원이 이렇게 나에게 되물었다.

아니 내 말이 ㅋ

한국 개발자들이 그걸 몰라서 야근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윗선의 무대뽀식 스케쥴링이 가장 큰 몫을 하고 밟으면 밟히는 대로 살아가는 직장인의 삶의 방식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8. 출퇴근

비만 안오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25분 ~ 35분 정도가 걸리는데, 초반엔 길을 자주 잃어서 강제 파리 시내 여행을 당하곤 했다.

파리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도시라 도로가 좁아서 일방통행이 많다. 그래서 내가 갔던 길로 그대로 되돌오질 못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한다.

이것도 한 달 정도 같은 길로만 다니니 그 낯설던 도로가 친숙하게 느껴진다.

아침 저녁으로 노틀담이나 오뗄드빌, 루브르 박물관 등 아름다운 건물 들을 보며 출퇴근 하며 안구 정화를 하는 건 분명한데, 파리의 택시는 확실히 위험하다.


오뗄드빌(파리 시청) 앞에서 맨날 신호에 걸린다. 사람도 많고 난폭 택시도 많아서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는 구간.


자전거를 타고 도로 가생이를 달리고 있으면 택시가 바로 옆을 쌩하고 지나간다.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버스와 자전거만 허용되는 도로인데 말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에게 좀 더 옆으로 붙어서 달리라고 하는 기사가 있기도 하다.


비가 오면 전철을 탄다. 

한국 출퇴근 전철 풍경은 스마트폰 삼매경인데 여긴 그렇지 않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다.

왜냐면 폰이 안터지기 때문이다.

어쩌다 전철이 지하가 아닌 지상으로 올라가면 3G, 보통은 G가 뜬다.(그냥 안된다고 보면 된다.)

나는 책은 안 읽고 그냥 멍 때리면서 전철 안 사람들 구경한다.



이상 내가 경험한 프랑스 회사 취업 후 한달 간의 이야기다.

더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막상 쓰려니 잘 생각이 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