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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민

이민자의 의무 Convocation a la formation civique에 가다.

OFII에서 비자를 받고, 내가 반드시 들어야할 수업이 3가지 있다고 고지를 받았다.

  1. Convocation a la formation civique
  2. Convocation a la session d'information sur la vie en France
  3. 불어 수업(불어 실력이 낮은 사람들만인듯)
이 수업을 듣기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다.
대부분 프랑스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나 이민자들이 행정 처리 문제로 고통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이제 내 차례인가...싶었지만 취업을 해버린 나를 위해 현지인인 와이프가 거의 모든 일을 처리했다. 덕분에 와이프가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전화를 하면 받기를 하나 이메일을 보내면 답장을 하길 하나...어쩌다가 전화 연결이 되도 다시 연락 준다는 말만 남기고 다시 깜깜 무소식 ㅋ

현지인이 연락을 해도 이 정도인데 아직 불어를 잘 못하는 유학생들이나 이민자들이 이 절차를 거치려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위의 1,2번은 같은 기관에서 담당하고 3번은 또다른 기관에서 담당하는 듯 하다.
둘 다 정부 직속기관은 아니고 정부로 부터 일을 위임 받은 사기업인 것 같다.

취업 후, 첫 출근 날짜와 1번 날짜가 겹쳐져서 전화로 1번 날짜를 변경했는데 전화 연결도 힘들었지만 실제로 변경이 안되서 불참석 처리가 됐다. ( 알겠다고 하고 왜 불참석처리 시키는건데 )
그래서 경고장 비스무리한 것과 한 번더 기회를 준다는 내용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
게다가 요 기관들이 손발이 안 맞는지 2번 3번을 같은 날에 오라는 종이를 각각 받았다.(이쯤되면 그냥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아무튼 이 포스팅은 그 중에 1번에 대한 이야기다.

강의장이 집에서 가까운 편이라 자전거를 타고 갔다.

토요일 아침의 파리는 정말 조용하다.  몽파르나스를 지나면서 영화 28일후가 생각날 정도로.

팻말에는 9시 부터 연다고 쓰여져 있지만 내가 받은 편지에는 8시 45분 까지 도착하라고 손글씨로 젹혀있었다.



8시 45분에 딱 맞춰서 도착하니 벌써 몇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도 그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같이 기다렸다.

사진은 없지만 강의장은 특별한 빌딩이나 학교 같은 건물이 아니고 그냥 일반 다세대 주택이다.

9시가 되도 문이 안 열렸는데 그 건물에 사는 사람이 외출하러 문을 열자 우리는 기다렸단 듯이 우르르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밖은 밖이지만 아침의 쌀쌀한 바람은 피할 수 있었다. (10월이었음)

9시 한 10분 쯤 됐나, 한 남자가 들어와서 강의장 문을 열었다.


강의장의 느낌은 오래되어 보여서 고풍스러우면서도 정리가 안되서 허름한 느낌이었다.

교육에 사용되는 프로젝트는 렌즈가 오래됐는지 영상 여기저기가 깨져있었다.

햇빛이 안 들어와서 춥기도 하고...

'근데 뭐 이게 교육에 큰 영향이 있겠냐' 라고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의 모습.교실의 모습.


해당 수업 즉, Convocation a la formation civique에 대한 설명을 OFII 비자를 받을 때 영어로 수업을 듣고 싶은지 불어로 수업을 듣고 싶은지를 질문 받았었다.

아직 불어 실력이 안된다고 생각한 나는 영어로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수업이 전부 영어로 진행되는걸로 믿고 있었다.

대충 중간 쯤에 앉아 있었는데 인도계 여성이 들어오더니 영어로 수업 받을 사람은 교실 오른편에, 불어는 왼편으로 앉으라고 인도 억양 같은 것이 섞인 영어로 설명을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인도가 아니라 스리랑카계 여성이었다.

암튼, 영어로 수업을 들으려고 교실 오른편으로 자리를 옮기고 앉았다.

어떻게 수업이 진행될까 궁금했는데

아까 우리한테 자리를 옮기라던 그 스리랑카 여성이 우리쪽으로 걸어오더니 우리 ( 영어로 수업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 ) 사이에 앉는 것이다.


' 이 사람도 수업을 들으려 온 사람인가? '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이 오늘 수업을 영어로 통역해줄 사람이었다.

잠시 후 문을 열어줬던 남자가 들어오고 본인 소개를 했다.

이 사람은 오늘의 강사였다.

그리곤 한 명씩 불어든 영어든 본인 소개를 시켰다.

동양인 중엔 필리핀인이 제일 많았고 한중일 각각 1명 씩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는데

1. 각각 자기 소개 타임을 갖고 있는데 일본 여성이 일본에서 왔다고 하니 강사가 이런 국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이 좋다는 말을 했다. ( 물론 불어로 )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동유럽이나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국가에서 이민을 오니 하는 소리가 아닌가로 받아들여졌다.

2. 중간에 잠시 흑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 같았는데 어떤 이유에서 인지 고성이 오가더니 강사의 중재로 진정됐다.

흑형 보다 흑누이가 더 무섭다는 걸 실감했다.

3. 이미 프랑스에서 19년을 살았는데 불어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필리핀에서 온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하는 일이나 가족들 사이에서도 영어로 사용해서 그렇다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고 프랑스가 어떤 나라인지 부터 설명하기 시작해서 사회, 역사, 행정, 법, 종교 이슈, 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 그리고 Laïcité 에 대해 이야기 했다.

각 항목 마다 대략 30 ~ 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강사가 앞에서 설명하고 동시에 스리랑카계 통역사 ( 이하 통역사 )가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데, 이 통역사분이 의욕이 엄청 넘치는 사람이다.

우렁찬 목소리와 강한 엑센트가 섞인 영어로 설명을 해서 강사도 수업 중간에 말이 끊기고 영어로 수업을 듣기를 원하는 우리도 이해를 잘 못한다.

내 옆 자리에 호주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통역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나중엔 그냥 강사가 말하는 불어를 알아듣는 게 더 쉽다고 까지 했다.

통역사분은 뭐든 물어보면 자세하게 알려주거나 통역사도 헷갈리는 게 있으면 도중에 수업을 끊으면서 까지 강사에게 물어볼 정도로 열의는 대단했다.



기다리던 점심 시간이 왔다.
한 세명 정도 자원을 받아서 강사는 이들에게 식사 준비를 시켰다.
전부 전자렌지에 돌리면 되는 것들이었다.

점심식사감자튀김(같은것), 생선튀김, 정체불명 샐러드


식사는 좀 텁텁하긴 했지만 그냥 먹을만 했다.


다시 수업이 시작됐고 나는 급격하게 졸리기 시작했다.
내가 학창 시절에도 졸리기 시작하면 억지로라도 수업에 참여해서 졸음을 이겨내려고 하곤 했는데 이 방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강사가 

강사 : ( 불어로 ) 프랑스는 자유가 보장된 국가지만 길거리에서 나체로 활보하면 안됩니다.

이때다 싶었다.

나 : ( 영어로 ) 강사님, 길거리에 붙어있는 예술관련 포스터나 패션관련 잡지 등은 노출이 상당히 심하고 나체도 종종 보이는데 이건 괜찮고 나체로 활보하는 건 안된다는 겁니까?

아주 날카로우면서 흥미로운 질문이라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며 어느새 졸림도 날아가버렸다. 이제 토론만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강사 : ( 불어로 ) 뭐라고? 나 영어 잘 몰라

이 때 열정이 불타는 통역사가 나섰다.

통역사 : ( 불어로 ) 내가 생각에 이 한국인은 블라블라블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뭐라 통역했는지 나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교실이 잠시 웅성이더니 교사가 나를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는데 영어로 했는지 불어로 했는지 기억은 안난다. 여튼 또박 또박 말했다.

강사 : 안돼요. 길거리에 나체로 돌아다니면 안돼요.

나 : ( 영어로 ) 아니...내가 나체로 다니겠다는 게 아니고...

강사 : 안돼요. 길거리에 나체로 돌아다니면 안돼요.

나 : ( 영어로 ) ...Ok

이렇게 나는 나체로 돌아다니겠다는 사람이 돼버렸다.

그나마 옆에 앉아있던 호주 친구가 자기는 나의 흥미로운 질문을 이해했다고 안부 섞인 말을 해줬다.

잠은 깼는데...음...

마지막엔 시험도 있다.

문제가 불어를 아직 잘 못하는 나에겐 꽤 어려운데 ( 문제 자체를 읽는데도 시간이 오래걸리니까 ) 다행히 불어를 좀 하는 호주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대략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쯤에 끝이 났다.


아는 내용도 있고 모르던 내용도 있고 흥미로운 내용도 있고...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영어 통역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아예 반을 나누는 게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영어, 불어를 같이 진행하니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렁찬 영어 통역 때문에 방해가 많이 됐을 것이다.
수업 자료도 인터넷으로 다시 받아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내가 중간에 못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자료를 다시 볼 방법은 없어 보였다.

아, 친구도 두 명 사귀었는데 위에서 몇번 언급한 호주 친구와 이스라엘에서 온 친구다.
호주 친구는 호주 싱가폴 혼혈이라 영어 중국어에 불어도 조금 하더라. 에너지 관련 연구소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지식도 많고 흥미롭고 무엇보다 내 질문을 이해해줘서 고마웠다.
이스라엘 친구는 저널리스트인데 불어, 영어, 러시아어 그리고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연히 히브리어 아랍어도 잘 할 것이다.
세상에 참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람들이 많다고 다시 한 번 느끼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