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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이민 2 년



1.

프랑스로 이민 온지도 만으로 2 년이 좀 지났다. 

요즘 한창 느끼는 것이, 이민 1 년 차 일땐 '1 년 밖에 안있었는데 생각보다 불어를 잘 하네' 라고 스스로 생각을 했는데 2년이 되니까 '2년이나 있었는데 이것밖에 못해?' 라는 생각이 든다.

뒤돌아보면 불어 공부는 이민 초반에 시험 때문에 잠깐 공부하고 책 같은 건 손도 안댔다.

그냥 회사 다니면서, 일상 생활 하면서 눈치껏 알아듣고 눈치껏 대답했다.

그 동안 눈치 스킬만 레벨업 했다.


회사에서 터키에서 이민 온 프로젝트 매니저 (이하 PM)가 있는데 이 친구랑 일하면서 불어 듣기, 말하기가 좀 향상된 것 같긴하다.

다른 부서에서 특정 프로젝트 때문에 우리팀이랑 같이 일하게 됐는데 첫만남 부터 '너희 팀은 영어로 대화하니?' 라는 질문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줬다.

나중에 같이 일하다 보니 영어도 잘 못하거니와 10대 초반에 이민을 왔는데 본인은 열심히 노력해서 불어로 말하는데 내가 영어로 말하는 게 싫은 눈치였다.

가뜩이나 복잡한 프로젝트인데 뭔가 나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사람을 PM으로 두고 불어로 일을 하려니 생각보다 진행이 힘들었다.

짜증나서 나도 불어로 직원들이랑 대화하기 시작했고 이메일도 잘 안읽고 안보냈는데 굳이 시간을 내서 보기 시작했더니 이젠 얼추 눈과 귀에 들어온다.


사실 그냥 일상 회화는 그 전에도 했었는데 회의 때 사용하는 말이나 이메일을 보낼 때 사용하는 정중한 투의 말들은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았다.


이사를 가고 싶어서 집을 사든, 렌트를 하든 여러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이것도 와이프가 하던 일을 내가 거의 하고 있다.

은행 가서 물어보고, 부동산도 가보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부동산 컨설팅? 뭐 그런 비슷한 것들도 죄다 불어로 하고 있다. 나도 불어가 수준급이 아니고 그 쪽도 영어를 못해서 좀 헤맸는데 몇 번 하다보니까 대충 대화의 패턴이 보이더라. (즉 복붙)

암튼 그렇게 살다 보니 조금이라도 불어 실력이 늘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긴 하다. 아직 멀었지만.


2.

처음 프랑스로 올 때 내가 생각하는 삶은 엄청 여유로운 삶이었다.

그런데 한 2 년 살면서 보니까 그리 여유로운 삶인 것 같지는 않다.

회사 휴가는 올해에 더 늘어나 연차가 37 일에서 41 일로 늘었다. 그런데도 여유가 없다고 느껴진다.

왜일까.

파리도 도시라서 출퇴근으로 느끼는 답답함 때문일까. ( 그래서 가급적 전철을 안탈려고 한다. 다들 쓸데 없이 바빠보임. )

회사가 이사감으로서 늘어난 출퇴근 시간일까. ( 하루에 출퇴근으로 약 2시간 소비 )

이이가 태어나고나서는, 퇴근을 해도 집에서 쉬는 것 같지가 않아서 일까.


분명 이것들이 조금씩 다 영향을 미쳤을거라고 본다.

꼭 파리에 살아서 여유롭지 않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교외로 나가면 마음이 좀 편안해질거란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고뇌가 많았다.



3.

Creche 라고 탁아소 같은 개념인데 이게 공공이 있고 사립이 있다. 사립은 너무 비싸서 ( 한달에 약 1000 유로, 현재 한화로 약 130만원 ) 공공을 알아봤는데 내가 사는 15구는 아이들이 많기로는 거의  탑급이란다.

신청은 해봤지만 역시나 탈락.

Halte garderie ( creche랑 비슷한데 creche와 다른 점은 주5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를 봐주는 게 아니고 부분적으로 봐주는 방식. )를 신청해봤는데 고생끝에 하나를 찾긴 찾았다.

문제는 월 - 화만 봐주고 내년 1월 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한 달에 한 번 부모가 와서 시설관리나 (청소 및 여러 잡다한 업무) 아이 교육 등에도 참가해야한다.

우리가 가려는 이 halte garderie는 15구에서 도저히 creche 나 halte garderie를 못 찾은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회사 동료들 중에 부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creche를 구했는데 ( 그것도 15구에서! ) 왠지 우리만 못구한 것 같아서 속이 좀 상했다.


4. 

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하필 아이가 태어날 때 와이프의 가족들이 전세계로(?) 흩어졌다. 

장모님 장인어른 께서는 전부터 남미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었다며 이민을 가셨고,

처제는 스위스에 취직이 돼서 갔고,

막내 처제는 이미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파리에서 양가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다가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걸 한국에선 독박육아 라고 하더라.

거기다 아기 영아산통이 너무 심해서 과장 좀 보태서 밤낮으로 아기가 울기만 했다.

나야 초반 한 달만 휴가 받아서 아기를 돌봤지만 와이프는 내 한 달 휴가가 끝난 후 부터 영아산통이 거의 끝나기 시작한 5개월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최근엔 아이의 영아산통도 없어진 것 같고 잘 먹고 잘 자고 해서 우리 삶도 조금은 돌아온 것 같다.

아이 재우고 밤에 영화를 본다든지 친구 한 두명을 밤에 초대해 와인 한 잔 한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회사를 가는 게 쉬는 것 같고 집에 오는 게 일하러 가는 듯한 시절이 몇 개월 있었는데 그게 벌써 과거가 됐다니 믿기지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글을 쓰다보니 아무래도 2 번에서 말한 여유가 없다고 느낀 건 육아였던 것 같다.



5.

난 한국에서 살 때 요리를 거의 안하다시피 하고 살았는데 여기선 아주 조금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비용도 비싸기도 하고 맨날 또 먹다보니까 질린 것도 있는 것 같다.

프랑스에선 샐러드도 식사가 되더라. 야채도 잘 안먹는 성격이었는데 샐러드에 맛이 들리면서 덩달아 좋아하게됐다.

바게트는 또 왜그렇게 맛있는지 샐러드랑 함께 먹으면 특히 더 맛있더라.

스테이크를 좋아하는데 파리 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선 아주 비싼 레스토랑이 아니면 안먹는게 좋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됐다. 

이런건 교외나 시골에 있는 레스토랑이 훨씬 싸고 고기질도 엄청 좋더라.



6.

그래도 여기 2 년 살았다고, 여행 갔다가 파리로 돌아오면 내 집에 온 듯한 편안한 느낌이 들긴 들더라. ( 동시에 아 내일 일가는구나...하는 생각도. )

처음 프랑스로 올 땐 취업 걱정부터 언어 걱정 등등... 왠지 그나마 기회가 많다는 독일이나 영국으로 다시 이사를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2 년이나 여기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나를 보니 신기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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