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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민

프랑스 영주권

이 글은 영주권에 관한 글이지만

집을 한 번 사볼까 - 1 그리고 집을 한 번 사볼까 - 2 와 연결된다.

2016년에 집을 사려다가 비자 때문에 무산된 터라 2017년을 상당히 짜증나게 보내고 있었다. 길을 걸으면 보이는 건 남의 집들이요, 유난히 눈에 띄는 신축건물 광고들. 2016년에 끝날 줄 알았던 PTZ 대출 2017 뉴스 등등.

아,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부동산 따위에 목을 매던 사람인가. 내가 너무 속물 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는 회사 동료 직원이었나 암튼 누군가가 변호사라도 만나서 물어보라고 했다.

회사에 한 달에 한 번씩 변호사가 와서 각종 상담을 해주는데 가서 물어봤더니 내 경우가 특이해서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비자와 관련된 문제는 정부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변호사 상담센터가 있다는 걸 알게됐다.


'왜 대출이 안되는지 말이라도 속시원하게 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갔는데, 일단 변호사의 말은 은행의 행동이 불법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1년 짜리 비자는 정치와 관련된 투표를 못할 뿐이지 다른 것은 차별돼면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소송을 걸면 시간도 너무 오래걸리고 이길지 어떨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호사가 그냥 10년 짜리 비자를 따는건 어떠냐고 했다.


10년 짜리 비자를 모르는건 아니지만 내가 알아봤을 땐 최소 와이프랑 3 년 (4년 이었나?!) 동안 같이 살았단걸 증명해야하고 이 당시 (2017)엔 내가 프랑스에 온지 2 년이 됐기 때문에 프랑스에서의 2 년을 증명하는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나머지 1 년, 즉, 한국에서의 1 년을 어떤식으로 증명하냐였다.

서류문제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한국에서의 1 년을 증명하는 것이 너무나도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냥 1 년을 더 기다리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때가 미국이 이미 금리를 올리고 있던 터라 세계적으로도 금리가 오르고 있었고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1 년을 더 기다리는 게 아깝게 느끼고 있었는데, 나의 사정을 들은 누군가가 그럼 어짜피 밑져야 본전인거 경시청 가서 10년 짜리 비자 신청이라도 해보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계약했던 집이 무산된 이후로 나는 뭐 때문에 안되고 뭐 때문에 불안하고...행동은 안하고 가만히 앉아서 불안해하고만 있었다.


일단, 파리에 있는 공증 번역사가 번역을 할 서류들을 한국으로부터 받았다.

이때도 쉽진 않았다 아포스티유를 모르는 한국 공무원들도 많고 내가 직접한 것도 아니여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고생을 좀 했다.


그렇게 서류들을 챙기고 공증 번역사를 방문해서 번역을 맡겼는데 번역사가 이 많은 서류들을 가지고 뭘 할거냐고 물었다.

10년 짜리 비자 받을려고 그런다고 하니까 그 번역사가 프랑스에서 얼마나 살았냐고 물었다. 2 년 됐다고 하니까 혹시 월 수입이 많거나 암튼 돈이 좀 있냐는 식으로 물었다.

월세 겨우 내고 살고 있다고 하니까 미안한 소리지만 10년 짜리 비자 못 받을 것 같다고 했다.


거의 마음속으로 이런 느낌이었다.



번역사 본인 경험상 나 같은 조건의 사람이 10년 짜리 비자를 받은 걸 본적이 없고 자기도 이거 번역하면 500 유로 이상 벌지만 내가 안되는 일하고 돈만 날릴 것 같아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렇게 실망스러운 이야기를 듣고 결국 번역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짜피 여기까지 온 거 그냥 경시청에 가보기로 했다.

와이프랑 같이 가서 사정을 설명했다.

2 년 같이 프랑스에서 산 건 증명할 수 있는데 나머지 한국에서 같이 살았던 걸 어떻게 증명해야 너네들을 만족시킬 수 있냐고.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뜬금없다.

그런거 필요없고 프랑스에서 몇 달 같이 살았던 것 정도만 증명하면 된단다.

그게 법이 바뀌어서 간소화 됐단다.


헐...이건 또 뭔소리야...


기뻐해야할 상황이긴 한데 하도 다이나믹하고 드라마틱한 일들이 최근에 많아서 별로 믿지도 않았다.

그래도 일단 준비할 서류가 많이 간단해졌으니 필요 서류를 준비하고 다시 경시청을 방문했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되어 번호가 뜬 자리로 갔다.

나를 부른 아저씨는 내 서류를 한 5 분 정도 말 없이 들여다 봤다.

그러더니 첫마디를 말했다.


'한국에서 온 서류는요?'


'ㅅㅂ 내 이럴줄 알았어! 어쩐지 뭐가 풀리나 했다!' 속으로 욕이 나왔다.


나랑은 다르게 와이프는 침착하게 너네 동료직원이 한국 서류 필요없다고 했다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그런건 난 모르는데 라는 투로 대답을 했다.


'그 때 그 동료직원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하고 모든 걸 포기하는 찰나 


신이 내려왔다.


그 남자의 매니저급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다가 우연히 우리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그 매니저는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서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남자랑 무슨 대화를 하는데 내가 알아듣기론 하여튼 뭐가 법인지 뭔지 바뀌었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그 남자는 '아 난 몰랐지~' 라고 했다.


'와...이거 지금 되는건가?'

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법이 바뀐거면 이민자에겐 큰 건데 어떻게 이걸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이 몰랐지?' 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이곳의 행정직을 하는 사람들은 내가 모르면 찾아보는게 아니고 '내가 모름. 끝.'이라는 식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치를 떨었다.


여튼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등록을 마쳤다.

10년 짜리 비자가 실제로 발급되는 건 내 1 년 짜리 비자가 끝나야지 가능한 거라 몇 달을 더 기다려야했다.

그동안의 경험 탓인지 기다리는 내내 불안했다. 또 뭔 이유로 비자 발급이 취소될지...


그러나 다행히 큰 문제 없이 10 년 짜리 비자가 발급 됐고 그 동안 중단됐던 내 집 마련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참고로 프랑스에는 영주권이 없다.

1 년, 10 년 비자가 있고. 아니면 국적취득이다.

2017년에 들어서 2 년, 4 년 짜리가 생겼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10 년 비자를 사실상 영주권으로 보고 있다고 해서 제목을 영주권이라고 했다.


덤으로, 그 동안 갈 때 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시청을 10 년 동안 안가도 돼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