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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취업, 회사 이야기

프랑스 회사 취업 후 드디어 90일. 그 동안의 이야기.

왜 제목에 '드디어'가 붙었을까.

그 이유는 90일이 지난 나는 이제 진짜 CDI 고용인인 것이다.

CDI (contrat à durée indéterminée )는 불특정 계약기간을 의미한다.

반대인 CDD (contrat à durée déterminée)는 특정 계약기간을 의미한다.

CDD는 또 프리랜서랑은 다른 것 같다.

내가 구직활동을 할 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Remixjobs 에서도 보면 체크박스란에 CDI, CDD, STAGE, FREELANCE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 STAGE는 우리가 생각하는 인턴의 개념이다. )

당시 나는 뭐든 일단 그냥 구하기만 했으면 해서 별로 신경 안 썼던 부분이긴하다.

나는 운 좋게도 처음 부터 CDI로 입사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프랑스는 해고가 어려운 만큼 고용도 엄청 신중하다. ( 근데 내가 고용된 프로세스로만 봐선...; )

그래서 그런지 3개월의 일종의 테스트 기간 ( Période d'essai ) 이란 것이 존재한다.

이것은 한국에서의 '인턴기간'이라고 보면 된다. 단 급여는 한국처럼 차감은 없다.

이 3개월 동안 고용주 또는 고용인이 원하면 이유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해고 또는 퇴사가 가능하다.

최장 6개월 까지 ( 3개월 + 3개월 ) 까지 연장이 가능하단다.

그 6개월이 지났는데도 회사에서 통보가 없으면 자동 CDI로 된단다.


이건 약간 다른 이야긴데 입사 후 계약서를 안 쓰고 6개월 이상 근무를 하면 자동 CDI로 된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측은 계약서 등을 확실하게 하는 편이라고 한다.


암튼, 아무리 CDI로 계약서를 썼어도 3개월이 안 지나서 가끔 불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프로젝트 몇 번 하다가 버림 받는 건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걱정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는 것 같다.

친한 동료직원이 생겼는데 이 친구한테 내가 느끼는 이런 불안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다 너 보다 훨씬 이상한 사람(?)도 CDI로 무사히 계약했다는 이야길 듣곤 했다. 기분 탓인지 이런 대답을 들을 때 마다 기분이 안정되면서 더러웠다.


그렇게 일한지 3개월이 거의 다 될 무렵 상사 중 한 명이 나와 내 동료직원을 회의실로 불렀다.

회의실엔 나의 3개월을 평가한 표가 있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회사는 나와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으며 내가 원한다면 CDI 계약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사소한 거긴 한데 '너를 고용하기로 했다' 라는 게 아니고 대등한 위치에서 '너가 마음에 드는데 너는 어떠니 ?' 라는 어조라서 더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대강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평가 항목에는

  • 내가 3개월 동안 했던 프로젝트별로의 팀 커뮤니케이션, 외부 즉 클라이언트나 IT팀 외부의 팀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평가
  • 기본 태도, 환경 적응 능력, 협동, 책임감, 스트레스에 대한 표현(신경질이라고 쓸려다가 말았다), 자주성
  • 팀 멤버가 생각하는 나의 장단점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나는 대부분 중간에서 중간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만 점수가 낮았는데 내가 불어를 아직 잘 못해서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을 거의 안했기에 점수가 낮다고 했다.

자주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반면 디테일에 신경을 쓰느라고 중요한 것을 놓친다는 지적을 받았다.
맞는 말이다. 가끔 사소한 건데 별 것도 아닌게 안되면 답답해서 몇 시간이 매달릴 때가 있긴 하다. 해결해도 여전히 열받는 그런 것들...
열혈 코딩도 중요하지만 프로젝트를 할 떈 마음을 더 차갑게 해야겠다는 걸 또 여기서 느꼈다.

이 평가 자료는 6개월 또는 1년 후에 이것을 기준으로 또 다시 평가된다고 한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상사는 나에게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할 의향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와우를 좋아하는 직장 상사는 

'무릇 팀이란 와우의 길드와도 같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선 서로가 힘을 함쳐야 한다. 우리 서로 힘을 합쳐서 던전을 공략하자'

라고 말했다.

명언이다.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맞는 말이다.

그리고 덧붙여서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우린 저 디스플레이 뒤에 있는 사람이다. 클라이언트는 가끔 본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생각하면서 모를 때가 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도우면서 구체화하는 사람들이다. 코딩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란 뜻이다'

크~~ 
알고보니 상사는 명대사 제조기였나보다.

나를 믿어주고 기회까지 준 상사와 동료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타지에서 이 CDI라는 계약서로 고용 불안에서 해소되니 확실히 마음 한구석이 놓이긴 했다.
다음은 3달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경험 했거나 느낀 것들을 적어보겠다.

MacBook, iPhone, iMac
애플 제품들...전에 취업 한 달차 이야기에 언급하긴 했는데 난 애플 제품 사용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맥북에 아이폰5까지 받았다. ( 이제 일을 집으로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
아이폰은 개발용 맥북은 아이맥이 5년이나 돼서 대체용으로 받았다.
주변에 애플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애플 제품은 ' 편한데 비싸고 약하다' 였다.
가격이야 나도 비싼 건 알고 있었고 약한 것도 아이폰 깨 먹는 친구들을 자주 봐서 알고
편한거, 그게 궁금했던 차였다.
아이맥도 3달 쓰다 보니 단축키도 많이 외워서 마우스는 잘 안쓰는 정도까진 됐다.
근데 아이폰은 아직도 모르겠다. 생각 보다 느리고 설정 화면들도 논리적인지 모르겠다.


업무 스타일
확실히 야근이 없다보니 정해진 스케쥴안에 업무를 끝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탕비실 같은데서 장시간 잡담을 한다거나 스마트 폰 게임을 한다거나 하는 행동은 거의 없다.
가끔 모여서 떠들면서 샴페인 한 잔 하기도 하는데 그건 퇴근시간이 가까워졌거나 금요일인 경우다.
개발자 같은 경우는 미팅도 거의 없고 있어도 화상채팅으로 한다. 가끔 오프라인 미팅을 하는데 나는 그마저도 불어를 아직 잘 못해서 안 끼워 준다.
나는 오전에 개발이 잘 되서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이어폰 끼고 중요한 작업들 부터 먼저 한다. 오후 4시 넘어가면 집중력이 떨어져서 간단한 코딩이나 업무 진행 체크를 한다던가 사내 이메일 확인 등을 한다.

한국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내 일이 끝나도 직장 상사 일이 안 끝났거나 하면 알아서 남아있어야 하는 문화가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첫회사에서 내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려 하는데 ' 상사가 안가는데 퇴근해요 ? ' 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뭐, 그 말 듣고서도 '내가 남아도 도와줄 수가 없어서 집에서 쉬는 게 더 이득이다'라는 투로 이야기하고 결국 퇴근했지만 ㅎㅎ



휴가? 퇴사?
가끔 한 직원이 안 보인다.
' 아 퇴사했구나... ' 라고 생각했는데
한 2 ~ 3 주 후에 나타나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 동안 어디서 뭘 했냐고 물으면 브라질 같은데 가서 쉬다 왔다고 한다.

휴가자와 퇴사자 구별법은
퇴사자는 각각의 테이블을 돌면서 작별 인사를 한다.
한국과는 다르게 축하한다라는 말을 하더라.



사내 파티
듣기론 1년에 사내 파티가 두 번 있다고 한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크리스마스 전 주에 파티를 한다는데 매번 테마가 있단다.
올 해엔 가면 무도회.

난 춤을 못 춰서 파티 같은데 가면 그냥 술만 퍼마시는 스타일이다.
다들 기대하고 있는 눈치던데 나도 마스크 하나 장만해야겠다. 마스크 쓰고 술 퍼마시게.

올 해엔 가면 무도회라고 아예 책자까지 만들어서 사내에 배포한다.올 해엔 가면 무도회라고 아예 책자까지 만들어서 사내에 배포한다.

가면 무도회에 하면 안되는 것들가면 무도회에 하면 안되는 것들. 더한 이미지도 있는데 이건 못 올리겠다.

 


회식

회식을 거의 안한다. 최근에 한 번 했는데 음...한국인이 봤을 땐 이건 회식의 그 느낌이 아니다.

개인적으론 조금 아쉬웠던 부분인데 나중에 따로 적어보겠다.


아프리카 봉사활동

회사 이메일을 보다가 계속 아프리카 어쩌구 하는 메일이 오길래 기부하란 건가? 라는 생각에 동료 직원에게 물어보니

회사에서 진행하는 봉사 활동이란다.

약 2 ~ 3 주 동안 아프리카 국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경비, 식비, 체류비는 일체 회사가 부담한다. 단, 2 ~ 3 주의 기간에는 본인의 휴가를 5일 사용해야한다는 조건이 있다.

휴가가 1년에 37일이나 있으니 언젠간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서 뭐해서 봉사를 하냐고 하니 불어를 가르친다던가 작은 공사 등을 한다고 한다.

난 불어를 한다고 해도 남에게 가르칠 실력이 될리는 만무하니 막노동 당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