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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취업, 회사 이야기

프랑스 회사의 회식

드디어 기다리던 회식이 왔다.

프랑스의 회식은 어떨까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입사 한달 반쯤 됐을 때였나, 팀 매니저가 전체 메일을 돌렸다.

한국에선 짧게는 당일. 좀 점잖으면  2 주 전 쯤에 회식일을 잡곤했는데 여긴 1달 반이나 전에 회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내 이메일로 참석 여부를 받고 자유롭게 참석 / 불참석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난 한국에 있었을 때도 회식을 좋아하던 타입이라 소식을 듣자마자 수락을 눌렀다.


대강 스케쥴은

1차 : 레이저건 서바이벌 게임

2차 : 식사

3차 : 각자 알아서들

이었다.


'레이저건 서바이벌 게임'

음...

'설마 내가 초딩 때 몸에 하드디스크 같은 거 두르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레이저건을 서로 쏘아대던 그것인가?'

'조춘 아저씨가 모델로 있던 그것?'

21세기 레이저 게임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별별 상상을 다 했다.


회식날이 다가왔고 업무가 끝나자 알아서 약속 장소까지 모였다.

이날 약 20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간간히 아예 다른팀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냥 우리 부서랑 친하니까 왔나보다.


드디어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했는데 정확하게 내가 초딩 때 했던 것과 똑같은 게임이었다. ( 어떻게 달라진게 하나도 없어 )

타겟이 달린 조끼를 입고 레이저건에 맞으면 몇초간 총을 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룰이나, 어두컴컴한 미로같은 맵.

거의 실사판 서든어택이다.

처음엔 연사가 되는지 모르고 한방한방 쏘다가 후에 연사 기능을 알고 사방을 누비며 적(?)을 사살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뛰어다닐 때 칼을 꺼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칼이 없어서 그냥 총만 들고 뛰었다.


뛰어다니기는 내가 제일 많이 뛰어다닌 것 같은데 20명 중에 5등 밖에 못 했다. 약간 요령이 부족한 것 같았다.

군대에서 배운대로 총은 전방 향하고 허리 약간 숙이고 뛰어다녔는데 아무래도 이런건 좁은 미로에선 쓸모 없는 것 같았다.

하도 여기저기 뛰어다녀서 직원들로 부터 '닌자'라는 칭호를 얻었으나 참 실속 없는 닌자였다.


두 번의 게임 후 ( 한 게임 당 20분 ) 각각 점수표를 받게 되는데 여기엔 총 점수에 내가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에 대한 수치에 누가 누구를 얼마나 많이 쐈는지 등 세세한 정보가 적인 표가 있다.

이 표를 보면서 누가 누구를 쐈네 몇번 죽였네 하면서 한 참 떠들고 있는데 이 회식을 기획한 팀 매니저가 건물 지하로 내려가라고 했다.


지하에는 와인과 음료, 핑거푸드가 준비돼 있었다.

아예 레이저건 게임장과 지하가 연결돼서 게임 후 바로 회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아 이렇게 시작하는구만'

나는 가볍게 샴페인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몇몇 직원들이 집에 가는 것이다.

술잔을 들자마자 집에 가다니 처음엔 약간 놀랐지만 여긴 프랑스라는 사실에 정신을 차렸다.


잠깐 여담인데 술을 마시다가 동료직원이 물었다.


동료직원 : 너 총 잘 쏘더라? 총 좀 쏴봤어?


나 : 나 군인이었잖아 한국에서...


동료직원 : 뭐? 군인이었다고? 


( 갑자기 주변 동료들이 그 말을 듣고 모여든다 )


나 : 한국에서 남자들은 장애가 있거나 정계 자식이 아닌 한 전부 군대에 가


동료직원들 :  헐...얼마나?


나 : 난 2년이었는데 우리 아버지 때는 3년, 현재는 1년 10개월 정도?


동료직원들 : 헐!!!


나 :  근데 나는 그 중에선 총 못 쏘는 편이야. 툭하면 PRI 받았거든


동료직원 :  PRI가 뭔데 ?


나 : 음...그런게 있어 고통스러운거야. ( '피'나고  '알'박히고 '이'갈리는...을 영어로 설명해봤자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



한 40분 쯤 지났을까 술도 다 떨어졌고 ( 애초에 별로 없었다. ) 음식도 다 떨어져서 사람들이 슬슬 외투를 입고 밖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2차로 가는구만'

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따라나갔다.

그런데 한 명도 빠짐 없이 우버앱을 키거나 전철을 타러 가버리는 것이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서 상황 파악을 잘 못하고 있었는데 이대로 회식이 끝난 것이었다.

그러니까 레이저건 게임이 주이고 저 핑거 푸드에 와인이 옵션격.


그렇게 동료직원과 전철을 같이 타고 돌아오는데 동료직원이 말했다.



동료 직원 : 내가 여기에서 일한지 3년 됐는데 처음 회식해봐. 이것도 나쁘지 않네.



3년 동안 회식을 한 번도 안 했다니 역시 한국과는 달라도 엄청 다르구나.


한국에서는 보통 새 사람이 들어오면 의례적으로 한 번 하고 대부분 싫어도 1차는 참석하는 등 보이지 않는 룰이 있다.

나는 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개의치 않았지만 원치 않거나 약속이 있는 사람들에겐 여간 싫은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했던 와이프도 회식 문화에 대한 비판을 하곤 했다.

회식을 한다고 해서 팀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해서 사이가 벌어지거나 서먹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업무에 관한 이야기나 개인적인 이야기도 얼마든지 업무 시간안에 할 수 있고 꼭 술에 취하지 않아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데 말이다.


한국의 회식 문화라면 처음 드는 생각은 '회포를 푼다'라는 것이 먼저 든다.

무언가 억눌려왔던 것들이 폭발하는 느낌?

물론 그 속에서도 사내 정치가 발동되기도 하고, 업무의 연장이 되기도 하더라. 


여튼, 첫 프랑스에서의 회식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싱겁게 끝났다. 내가 한국에서의 그것을 생각해서 그런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