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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처음 프랑스 병원 간 날.

일요일 낮 부터 몸이 으슬으슬 했다.

오전에 먹은 레바논 샌드위치가 얹힌 느낌이 들었다.


'진통제 먹고 낮 잠 좀 자면 나아지겠지'


하고 몇시간 자고 일어 났더니 구토 증세에 열까지 더해졌다.


월요일 아침에 가능하면 출근을 하려고 했는데 회사에 열이 많이 나서 집에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프랑스는 한국 처럼 아프다고 바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여기에서 '병원 ( hôpital )'이라고 하면 수술이나 큰 병이 있을 때 가는 곳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병원들의 규모도 다 크다.


이 병원의 이전 단계가 있는데 한국의 '의원' 개념과 비슷한 것 같다. 'docteur indépendant' 라고 하면 알아듣더라.

긴급한 일이 아니면 이 의원을 먼저 만나고 여기서 처방전을 받는단다.


와이프의 도움을 받아 근처 가까운 의원을 인터넷으로 찾고 예약을 했다.


다행히 집 바로 앞에 의원실이 있었는데 느낌이 약간 가정집 같았다.

카운터에 있는 사람도 간호사 같진 않고 비서 같은 느낌이었다.

더 특이했던 건 한 사무실을 4명의 의사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사무실에 한 6평 정도 되는 방이 5개 정도 있고 각각의 방을 각 의원들이 사용하고 나머지 방 하나를 환자 대기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와이프의 말에 따르면 월세가 비싼 파리에선 흔한 일이란다.


한 10분 기다리니 의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내가 만난 의사는 초면이 분명한데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어가 가능한 의사라고 인터넷에서 봐서 예약한 건데 정작 영어를 잘 못하더라...그래서 와이프가 옆에서 통역을 해줬다.

청진기를 가지고 몇분을 이리저리 대보더니

' 한 3일 정도는 쉬어야겠는데 ? '

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무슨 문서를 작성해서 나에게 줬다.


' Avis d'arrêt de travail ' ( 한국어로 하면 병가소견서 ?? 직역하면 일을 멈춰야 하는 소견?? ) 라고 불리는 이 문서를 회사에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병원비 + 약값 포함해서 50유로 정도 나왔는데 의료보험이 있어서 몇개월 뒤에 전액 환급 된다고 한다. )



Avis d'arrêt de travailAvis d'arrêt de travail는 이렇게 생겼다.




집에 오자마자 이 문서를 스캔해서 회사 HR팀에 보냈다.

내 병명은 바이러스성 장염이었는데 뭐 이런걸로 3일이나 회사를 빠지나 싶어서 팀 매니저에게 3일 동안 집에서 일하겠다고 했더니


' 의사가 3일 동안 쉬라고 했으면 3일 동안 쉬라는 뜻 이므로 지금 부터 회사 이메일, 메신저 전부 끄고 개발도 중지하고 3일 후에 보자 '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화상 통화를 한 것도 아닌데 마치 매니저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당시 나의 상상속에 비친 매니저의 모습




그렇게 3일을 푹 쉬니 몸도 나았지만 정신적으로도 휴식을 취해서 일의 대한 의욕이 넘쳐났다. (하지만 내가 복귀하는 날이 회사 파티하는 날이라 제대로 일을 못했다)

내가 아직 입사한지 6개월이 안돼서 유급 병가는 아니라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최소한 회사측이 고용인을 위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없는 3일 동안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딜레이 됐고 다른 개발자 들은 그 동안 다른 프로젝트 준비나 리팩토리 등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 사회 나가서 아프면 서럽다 ' 라는 말이 있다.

학창 시절엔 이 말을 이해 못 했는데 군대에서 부터 아프면 눈치, 차별을 받더니 ( 심지어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보겠다고 한 후임이 말하니 앉았다 일어서기 천번 하고 가라는 고참도 있었다; ) 제대 후 사회에서는 당연한 듯이 아픈 사람에 대해 비난하거나 눈치를 준다.

사람들도 이를 이미 알고 있어서 아파도 병원가겠다는 말을 못하던가 점심 시간에 다녀오거나 그냥 참거나 한다.

나도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 어디 아프다고 얘기했다가 선임들로 부터 ' 너만 아픈줄 알아? ' 라는 투의 대답을 들은 적이 있다. ( 그 이후엔 서로들 누가 더 아픈지 배틀이 붙었다... )

다들 무언가가 두려워 아파도 참고 아닌 척 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면 죄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런 환경에서 살던 내가 여기 프랑스에서도 몸이 아프니 바로 동료 직원들과 매니저에게 미안한 생각 부터 들었다. 아니 그 전에 그들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이미 한국의 삶을 좀 아는 와이프가 내가 잘 못해서 몸이 아픈 것도 아니니 죄책감 느낄 필요 없다고 나를 다독였다.


아, 의사를 어디서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 날 저녁이 돼서야 생각났다. 그 의사 선생님 클리어 모레츠랑 엄청 닮았다.

그런지도 모르고 전에 어디서 만난 사람인 줄 알고 한참을 생각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