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랑스 이민

이민자들이 들어야하는 불어교육 - 2


시작

2015년 10월 부터 불어 교육을 시작했다.

교육장은 belleville역 근처에 있었다. 

내가 사는 집은 15구라서 완전 정반대였다. 파리 안에 교육장이 분명 많을텐데 나를 왜 여기다가 보냈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전 교육도 그랬지만 그냥 일반 가정집 처럼 생긴 곳에 교육장이 위치해 있었다.

도착하니 얼추 12 ~ 13명 쯤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다 큰 어른들이 쭈뼛쭈뼛 거리고 있다 보니 교사로 보이는 여성분이 와서 문을 열어줬다.



학급 분위기 및 학우들

일단 분위기 자체는 딱딱하진 않다. 유머도 있고 난이도도 높지 않아서 따라가는데 힘들진 않다. 

그러나 수업시간은 하드코어 그 자체다.

내가 듣는 주말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나는데 이 중에 휴식 시간이 2번 (각 15분)이 전부다. ( 점심 시간은 1 시간 )

보통 오전에 한 번, 점심 먹고 오후에 한 번인데 실제론 상당히 힘겹다.

50분 수업 10분 휴식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40분 정도 지나면 입질이 와서 가만히를 못 있는다. 교실도 작고 인원도 12 ~ 15명 사이라 딴 짓을 할 수도 없다.

난 본능적으로 최대한 선생님의 사각지대(aka 명당)를 찾아냈다. 무조건 거리가 멀다고 좋은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시야에서 쉽게 벗어나거나 위장이 용이 해야한다.

이딴 잔머리는 나이를 초월하고 국경을 초월해 어디서든 발휘되나 보다.

나 말고 다른 명당은 일본인 친구가 차지했다. 선생님 바로 턱 밑이라 잠을 자도 잘 안 걸리는 정말 부러운 자리 중 하나다.


내가 속한 학급엔 이집트 사람이 4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은 필리핀인 3명.

한중일 각각 한 명씩 있고, 모로코, 도미니카 공화국, 미국, 코소보, 터키, 감비아(처음 들어봤음;;), 인도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휴식 시간에  보면 영어 가능자, 아랍어 가능자, 그냥 본인 국가 언어만 하는 자로 나뉜다. 그렇게 말이 통하는 사람들 끼리 놀게 되더라.

당연히 다들 불어는 잘 못한다 ㅋㅋ 그러니까 여기 왔지...


그런데 그 불어를 못하는 레벨이 각자 너무 다르다.

예를 들어 내 옆에 앉았던 이집트에서 온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아저씨는 일단 알파벳을 아예 모르시더라. 게다가 눈 까지 침침하셔서 내가 옆에서 공책에다 답을 써드려도 잘 안보이니까 이해를  못하셨다. 그런가 하면 모로코에서 온 친구는 여기 왜 왔는지 모를 정도로 불어를 잘 했다. (엑센트가 좀 강하긴 했지만) 왜냐면 모로코는 프랑스어 사용국가이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들은 발음이 문제로 자주 지적됐는데 혀를 꼬고 뭐 그런게 아니라 Le[르] 를 자꾸 [레]로 읽어서였다. (내가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사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는데 아예 알파벳 자음 모음이 조합되면 이런 발음이 나겠구나를 전혀 예측 못하는 경우다. 이 친구는 불어 수업이 끝날 때 까지 아쉽게도 이 부분을 고치지 못했다. 나한테 아이폰6S 샀다고 자랑할 때 거기에다 구글 번역기 사용법이나, 불어 공부 앱을 깔아주고 싶었지만 결례가 될 것 같아 생각만 하고 말았다.

인도에서 온 친구는 필기는 정말 세계 최고인 것 같은데 정말로 실력이 안 늘더라.

반면,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친구는 정말로 일취월장이었다. 스페인어 억양이 좀 있지만 일단 배운 걸 안 잊어버려서 그냥 옆에서 보는 내가 뿌듯했다.





학급사진뒤에 지도가 있어서 종종 본인 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기도 했다.





수업

이 불어 수업이 다 끝날 무렵에야 알았는데 커리큘럼이 있더라.

기억은 정확하게 안나지만 기본 소개, 인사, 길 묻기, 쇼핑하기 뭐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다.

따로 교재를 구매해야하는 건 아니고 수업 때 마다 교사가 오늘 배울 부분을 복사해서 프린트본으로 나눠준다. 

하루에 7시간 수업을 하다보니 받는 프린트도 꽤 많다.

위에도 썼지만 수업이 쉴새 없이 진행된다. 개인적으론 토요일을 이렇게 보내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오전, 오후 다 합쳐서 30분 밖에 쉬는 시간이 없어서 학우들과 잡담할 시간이 적었던 게 특히 아쉬웠다.


숙제는 거의 매주 있는데 그리 많은 양은 아니다. 나중엔 수업 당일 아침에 전철 타고 가면서 풀곤 했다.


불어 이외의 다른 언어는 수업 시간과 점심 시간을 제외하면 철저하게 금지돼있다.

일부러 그런 교사를 채용한진 모르겠지만 교사도 영어를 못해서 불어가 아니면 커뮤니케이션이 힘들다.

처음엔 일부러 안하는 건줄 알았는데 정말 못하더라.

우리가 모르는 불어 단어가 나오면 그걸 불어로 설명해야하기 때문에 온 몸으로 교사가 설명을 해야한다.

나 같은 경우는 폰으로 사전 켜 놓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마다 검색하곤 했다.



프린트물매주 받는 프린트물



출석체크

오전, 오후 한 번씩 출석체크를 한다. 표에 싸인만 하면 되는데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이걸로 내가 문제 없이 수업을 전부 이수했음을 증명하는 거니까...아끼는 비자를 잃고 싶지 않으면 대리 출석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자. 교실도 작고 학생도 얼마 없어서 다 들통난다.



휴강

가끔 휴강할 때도 있다.

내 경우엔 총 5번.

  • 크리스마스
  • 신정
  • 파리 테러
  • 교사 개인 사정 1
  • 교사 개인 사정 2
크리스마스,신정은 이미 휴강인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교사 개인 사정 같은 경우에는 개개인에게 휴대폰 문자로 휴강이라고 메세지가 가는데
내가 핸드폰 번호가 바뀐 것 때문에 모르고 수업장 까지 간 적이 있다. 전화 번호 바뀌었다고 파리 테러 사건 때 말했는데 역시 프랑스 답게 등록이 안됐나 보다.
프랑스 테러 때도 각자 휴대폰으로 문자가 갔다고 하던데 나에겐 오지 않았다. ( 폰 번호를 바꾼 걸 이 땐 안 알렸으니까 )
나중엔 학급 친구들 끼리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했다. (결국 난 한번도 Coallia로 부터 문자 메세지를 받은 적이 없다.)
파리테러와 교사개인 사정에 의한 휴강은 예정에 없던 일이라 2월에 끝날 수업이 3월까지 가게 됐다.



끝판왕은 시험

내가 수업을 받으면서 참 의아했던 게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우리가 치를 시험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곳에서 이민자들을 가르친지 3년이 넘었다고 했는데 너무 모르는 것 같아서 내가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하니까

본인도 매니저한테 정보를 받아야하는데 물어볼 '권한'이 없다고 했다.

그리곤 어떤 전화번호를 나에게 건네면서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당연히 다른 학우들도 궁금할 터, 와이프 찬스를 써서 전화를 시도 했는데

프랑스 답게 당연히 연결이 힘들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통화가 가능했는데 이 들도 정확하게는 모르는 것이었다.

그나마 건진건 수업이 다 끝나고 나면 각자 집으로 편지가 도착할 것이고 그 속에 언제 어디서 시험을 볼 지가 적혀있을 것이라는 거다.

내가 토요일에 수업을 들어서 그런진 몰라도 시험도 토요일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만족할 만한 정보였다.

수업을 마치기 1 - 2 주 전부터 시험에 관한 더 구체적인 정보를 들었는데, 우리가 통과해야하는 시험은 DILF A.1.1 이라고 했다. DELF가 아니고 DILF다.

가장 쉬운 레벨이고 이것은 반드시 통과해야한다고 했다. 통과 못하면 통과 할 때 까지 수업에 나와야한다고...

그리고 이미 OFII가 그 이후 수업에 관한 것 까지 돈을 다 지불했기 때문에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도 본인이 다음 레벨을 위해 수업을 더 듣고 싶다면 그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나 같은 경우는 지치기도 했고 회사에서 따로 불어 학원을 보내준다고 해서 여기서 더 할 마음은 없지만 여튼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빌어먹을 쉬는 시간은 좀 늘려줬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식사 시간

식사 시간은 보통 12시 반에서 1시에 시작해서 1시간 동안이다.

도시락을 싸 오는 사람은 간간히 있지만 대부분 나가서 먹었다.

대충 서너명이 짝지어 지던데 맨날 먹는 사람들끼리만 모이고 가던데만 가는 것 같아서 나는 가능하면 매주 같이 먹는 사람도 바꾸고 식당도 개척(?)하곤했다.

점심 시간에 내가 가장 활발했던 것 같다.

하루는 중국 친구를 따라갔는데 중국 음식을 먹자고 했다.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안내켰는데 의외로 괜찮은 맛이었다.

두부국? 같은 국에 고기만두에 츄러스 비스무리한 빵 하나 먹으니 3유로 조금 넘게 나오더라.

파리 물가에 대비해보면 싼 가격이면서도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

보통 파리에서 볼 수 있는 중국 식당 메뉴가 아니라서 이름도 모르고 이 글을 쓰다보니 다시 생각이 나서 더 먹고 싶어졌다.

점심 시간에 여성들을 따라가면 뭔가 브런치스러운 음식을 먹었고

남자들을 따라가면 케밥 같은 거 하나 시켜서 5분만에 먹어치우고 에스프레소 한 잔 들이키고 복권 한 장 사서 긁고 밖에서 담배나 피고 그랬다.



수업 마지막 날

수업 마지막 날엔 학생들 끼리 10유로씩 모아서 선생님에게 줄 선물도 사고 나머지 돈으로 파티를 하기로 정했다.

파티를 하기로 하기만 했지 먹을 걸 뭘 살지를 정확하게 안 정해서 막판에 슈퍼에 가서 과자 같은 거나 사서 먹고 뭔가 좀 엉성하게 끝났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저런 상황에 있다면 반드시 뭘 살지를 미리 정해두길 바란다.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인데다가 불어로도, 영어로도 100% 통하지가 않기 때문에 상황이 닥쳐서 뭐사지? 뭐사지?? 하니까 결국엔 콜라, 초콜렛, 전자렌지 요리 같은 것만 사왔다. 그 상태에서 미국인이 '이럴 거면 그냥 우리돈으로 점심 식사 알아서 사먹고 지금 이 돈으론 선생님 선물이나 하나 더 사드리자' 라고 영어로 말했는데 자랑이 아니라 그걸 나만 알아 들어서 다른 친구들은 '왜 저 미국인이 갑자기 불만이지?' 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어색하고 답답하고 뭐 여튼 그랬다.

그래도 마지막이란 생각에 기분이 후련하고 섭섭함 따윈 없었다. 어짜피 대부분 연락처를 주고 받았기 때문에.


아, 그리고 내가 속한 클래스가 이 업체 ( Coallia ) 에서 이민자들을 상대로 가르치는 마지막 클래스라고 교사로 부터 들었다.

OFII는 정부 산하의 부서고 거기서 사립 학원들을 고용해서 갑을병정 뭐 이런식으로 가는 것 같은데 이번에 Coallia와 계약을 안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이민자들이 통과해야할 불어 테스트 레벨도 더 높아질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ㅎㄷㄷ)


결론은 DILF는 의무, 나머진 더 보고 싶은 사람은 보란 얘기.




아무튼 이제 수업은 끝났고 나의 토요일은 돌아왔다.

아직 OFII로 부터 편지가 오진 않았지만 토요일 아침에 일찍 안 일어나도 된다는 생각만 하면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