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랑스 취업, 회사 이야기

인생 첫 스키를 알프스에서 타게 된 이야기

Comité d'entreprise(이하 CE)라는 시스템이 회사에 있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사내복지' 정도로 나는 해석하고 있다.

이 CE는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이번엔 CE를 이용해 스키를 다녀 온 이야기다.


올 해 초에...


동료 : 너 스키 타봤어? 한국에 눈 오나?


나 : 한국 눈...심각하지. 근데 스키는 안타봤어. 겨울 운동 싫어해 추워서...


동료 : 아 그래? 이번에 CE로 스키장 갈건데, 인원수 파악하고 있거든.


나 : (별로 내키지 않음) 그렇구나...근데 어딘데?


동료 : '알프스' 라고 프랑스와 스위스 사이에...


나 : 어디서 신청하면 되니?



'알프스'라는 말에 바로 수락해버렸다.

수 년 전, 스위스에 사는 처제집에 방문했을 때 봤던, 꼭 컴퓨터 그래픽 같이 생긴 알프스산.


스키는 사실 관심이 없고 알프스를 간다는 생각에 신청을 했다.


교통비(버스) + 2박3일 숙박료 + 조식/석식 + 스키 장비 및 부대 시설 이용 대여료 = 180유로. (본인 장비 있으면 여기서 차감되는 듯)


스키장을 안가봐서 모르겠는데 이 정도면 엄청나게 저렴한 것이라고들 하더라.

난 스키장비가 하나도 없어서 헬멧, 고글, 스키복 등등을 장인어른과 처남과 동료 직원들에게 조각조각 빌렸다.


일정은 

목요일 저녁 회사 앞에서 집합. 

금요일 오전 알프스 도착.

일요일 저녁 파리 돌아옴.


목요일 저녁에 빌린 장비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회사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파티 분위기에 무르익은 직원들이 근처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버스에 타고 다들 조용히 폰이나 만지작 거리고 헤드폰으로 음악이나 들으면서 갈 것이라는 걸 기대하는 것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거였다.

한국에서 중,고등학생 수학여행 때 떠드는 건 귀염둥이 수준이다.

이건 떠는 정도가 아니라 샤우팅이다.

나이가 좀 있는 직원들도 꽤 있었는데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듯 이 상황속에서도 잘 주무시더라.

한국 같았으면 기사님이 차를 세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여긴 프랑스고 프랑스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새벽 2시가 넘어가자 거짓말 같이 다들 잠에 빠졌다. 난 오히려 잠을 못 자고 내가 어쩌다 프랑스에 와서 알프스 까지 스키를 타러 가게 되나 등 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오전 9시쯤 되서 알프스에 도착했는데 정확히 'LES CARROZ D'ARACHES' 라는 곳이었다.

호텔에 가서 짐 놓고 바로 조식. 그리고 바로 사람들은 스키를 타러 갈 준비를 했다.


첫 날은 날씨가 많이 안 좋아서 시야가 정말 한치 앞도 보기 힘들었다.첫 날은 날씨가 많이 안 좋아서 시야가 정말 한치 앞도 보기 힘들었다.


꼭 최종 보스 전을 앞 둔 장면 같다.꼭 최종 보스 전을 앞 둔 장면 같다.


나와 가장 가까운 동료직원 둘은 스키를 안타봐서 제일 초심자 코스로 갔다. 몇몇 스키를 잘 타는 직원들이 우리를 가르쳐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백 번 정도는 넘어지거나 굴렀던 것 같다.


초심자 코스가 초록색이고 파랑 - 빨강 - 검정 순으로 코스의 난이도가 올라가는데 우리는 초록 - 파랑에만 머물렀다.


동료 직원들이 자신있게 하면 오히려 안 넘어질거라는데 문제는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있게 오른쪽으로 턴할려다가 실패하면 바로 낭떨어지행. 

불안해서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첫 날은 안개까지 많이 껴서 마치 사일런트 힐에서 스키를 타는 느낌이었다.


드디어 처음 리프트를 타는 순간이 왔다.

겉으로 보기엔 이것 역시 너무 안전 장치가 없어 보여서 불안했는데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스키를 같이 타던 동료 직원들이 먼저 리프트를 타고 나 혼자 뒤따라 탔는데 리프트 앞에 부분에 있는 보호대가 수동인줄 모르고 한참있다가 손으로 내렸다.

문제는 그 리프트에서 내릴 때 였는데, 보호대를 손으로 올려야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스키 폴대도 리프트 아래로 향하게 들고 있다가 폴대와 언덕 사이에 끼어서

일단 폴대는 다 부러지고 리프트도 멈춰버린 것이다.

리프트를 담당하는 분이 나와서 나한테 불어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몇 번이나 소리쳤다. 나는 이미 알아 들었는데 멀리서 이 광경을 본 동료 직원들이 

'쟤 한국 사람이에요. 불어 몰라요!!'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다.

그 광경을 지켜 보던 영국에서 온 어떤 분이 영어로 친절하게 번역을 해줬다. 가만히 있으라고. 이미 다 알아들었는데...

여튼 몇 분 간 멈췄던 리프트는 재가동 됐고 나는 부러진 폴대를 들고 무사히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서 잘 타는 직원들만 남겨두고 온 몸에 멍이 든 초심자들은 내려와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 점심으로 먹은 라클렛. 이미 치즈가 만들어져 나와서 좋았다.내려오는 길에 점심으로 먹은 라클렛. 이미 치즈가 만들어져 나와서 좋았다.


낮잠 한 판 때리고 저녁엔 역시 만찬과 함께 술 파티가 이어졌다. 호텔 내에 있는 Bar 겸 디스코텍 같이 생긴데에서 춤도 추고 잘들 마시더라.

술을 마시고 있으니 처음 봤던 다른 팀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부분 영어로만 대화하는 걸 보고 내가 외국인이라는 건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외국인이 한 명 더 있었다. 러시아에서 온 여자가 있던 것이다. 재미있는 건 그 친구는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 어떻게 온 걸까. 

회사에서 나온 자회사가 있는데 거기서 일하다가 '그만 둔' 직원의 여자 친구인 것이다.

뭐야 이거...내가 잘 못 들었나 하고 다시 한 번 물어 봤는데 내가 잘 못 들은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 러시아 여자 생일이라고 남친이 케잌이랑 위스키도 준비했는데 회사 직원을 포함해 그 호텔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 까지 모두 축하를 하고 난 뒤에 안 사실이라 더 놀라웠다.

그 퇴사한 남친이 수완이 좋은 건지 아니면 회사에서 미치는 복지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은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흥미로웠다.


이 동네 특산 술이라는 Génépi (제네피) 맛은 박하맛 나는 위스키다. 카톨릭 사제가 만들어 마시던 술이라고 한다.이 동네 특산 술이라는 Génépi (제네피) 맛은 박하맛 나는 위스키다. 카톨릭 사제가 만들어 마시던 술이라고 한다.



다음 날,

걱정과는 달리 날씨가 많이 좋아졌다.

멍든 몸을 이끌고 다시 스키장으로 향했다.

시야도 좋아지고 어제 보다 조금 자신감도 붙은 것 같았다.

아무리 봐도 컴퓨터 그래픽 같았다.아무리 봐도 컴퓨터 그래픽 같았다.


이 날은 점심도 산에서 먹고 스키도 재미가 들려서 꽤 높은 곳 까지 올라갔다. 

리프트가 한 10분은 넘게 올라가는데 장관이 정말 엄청 났다. 내가 스키장이 처음이라 그런지 원래 다른 스키장도 이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우와'를 연발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즐길만 한데?' 라는 생각이 들 때 쯤 스키가 끝났고, 부러진 폴대를 12유로 주고 보상했다.



마지막 날은 스키를 탈 사람은 추가 요금을 내고 타도 된다고 했지만 이틀간 무리를 했던지라 알프스산 산책이나 하기로 했다.

이 날 날씨는 어제 보다 더 죽여줘서 경치가 정말 플스4 그래픽 같았다.


남들 스키 타러 갔을 때 호텔에서 여유 좀 부려봤다.남들 스키 타러 갔을 때 호텔에서 여유 좀 부려봤다.


마을에서 스키장으로 곧장 이어지는 스키장이 있다.  스키 잘 못 타면 바로 남의 집 마당으로 들어가니 초심자는 그냥 걸어가야 할 듯.마을에서 스키장으로 곧장 이어지는 스키장이 있다. 스키 잘 못 타면 바로 남의 집 마당으로 들어가니 초심자는 그냥 걸어가야 할 듯.




버스 타기 전 찍은 사진. 날씨가 죽여줬다.버스 타기 전 찍은 사진. 날씨가 죽여줬다.


그렇게 꿈만 같던 2박3일의 일정이 끝나고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다.

1 시간쯤 지났을까 고속도로를 달리던 우리 버스를 경찰이 세웠다. 

과속으로 걸린건데 더 큰 문제는 버스 운전사가 운전 면허도 그리고 여행사 허가증? 뭐 그런 증서도 소지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일요일이라 여행사 본사와도 통화가 잘 안되서 30분 정도를 길 옆 들판에서 보냈는데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회사 직원들은 술래잡기 같은 게임을 하더라.


피곤도 하고 버스 회사에도 문제가 있어서 잠시 멈춘건데, 최선을 다해 노는 모습에 감탄했다.피곤도 하고 버스 회사에도 문제가 있어서 잠시 멈춘건데, 최선을 다해 노는 모습에 감탄했다.


경찰서 도착하자 마자 핸드폰 충전기 꽂아 놓은 모습.경찰서 도착하자 마자 핸드폰 충전기 꽂아 놓은 모습.


결국 본사에서 팩스로 관련 서류를 보내주기로 했는데 그걸 확인하려면 경찰서 까지 가서 1 시간을 더 기다려야했다.


파리에 애초에 생각했던 시간 보다 몇 시간이나 늦은 새벽 2시에 도착했지만 나에겐 잊지 못할 여행으로 기억될 것 같다.

후일담으로 이번 스키 여행 반응이 너무 좋아서 내년에 또 스키에 관한 CE를 만들기로 했단다. 다음에 가면 하루 정도는 스키 강습을 진지하게 받아 볼까 생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