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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취업, 회사 이야기

취업 후 7개월, 그리고 내가 만난 동료들

내가 회사를 다닌지 벌써 반 년 하고도 두 달이 지났다.

참 빠르다.

첫 3개월은 CDI 를 받기 위해 노력했고 그 뒤 부터는 나를 멤버로 받아준 동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CDI를 받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몇 달은 일 끝나면 놀러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이 노는 게 어느 순간 무료해지더라.


그러다가 퇴근 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오늘 내가 짠 코드의 실용성에 대해 집착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노틀담 아니면 루브르 박물관을 지나야 하는데 한 때는 이것이 퇴근시 느끼는 잠깐의 기쁨이었다면 내 코드의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머리로만 생각해서 그걸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적용하고 성공했을 때는 쾌락에 가까웠다.


내 스스로 발전을 했다고 느끼지만 동료나 상사 등이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 압력을 줬으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몇 달 동안 벌써 대여섯개의 프로젝트를 했는데 그 중에는 거의 복붙 수준의 정말 따분한 작업도 있었다. 그런 프로젝트에도 나에게 어느 정도 자유도가 주어지고 그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기에 모티베이션이 죽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하게 된 것 같다.

한국에 있었을 땐 프로젝트 자체가 흥미로운 적은 있었는데 일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 윗선에서의 압력이나(대부분 시간) 동료의 반대 등이 내가 넘어야 할 산들이었는데 결과는 중턱도 못 넘고 중도하차.

그렇다 보니 항상 자괴감에 빠져있기 일수였다. 


암튼, 이렇게 몇 달 열심히 다니다 보니 자주 식사를 하거나 잡담을 하는 친한 동료들이 생겼다.


가장 친하면서 가까운 동료는 바로 옆자리 Back-end Developer이다.

내가 입사하면서 부터 작은 것들 부터 하나하나 챙겨준 친구다.

3년간 학업과 일을 병행하다가 내가 입사하기 몇 개월 전에 CDI로 채용됐다.

학비를 전액 회사에서 지불해줘서 일정 기간 이상 이 회사에서 일해야 한단다.

'프랑스 학비는 얼마 안하잖아?' 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사립학교는 한국의 학비랑 뭐 별로 다를게 없더라.

이런 시스템을 Stage라고 하던데 학교도 공짜로 다니고 실무 경험도 몇 년이나 쌓게 돼서 졸업을 할 땐 이미 실무 경험이 2-3년 있는 경험자가 된다.

이 친구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스리랑카계이다.

사실 스리랑카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다가 동료 직원 때문에 관심이 생겨서 물어봤는데 이 친구도 잘 모른다. (...)

삼남매 중 막내인데 본인 빼고 다 스리랑카 언어인 타밀어를 한단다.

나루토의 굉장한 팬이라서 가끔 사스케의 형이 얼마나 멋진 녀석인지에 대한 설명을 프랑스인에게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나의 덕력이!!!)

프랑스인 치고는 Hard worker라서 가끔 저녁 8시 까지 일하거나 주말 및 연휴에도 일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 때문에 초과 근무 시간이 쌓여 다음 주 부터 강제로 2주간 휴가가 떨어졌다 (...)

원래는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돈으로 환급해 주곤 했다는데 특히 IT팀에서 휴가를 안가는 사람들이 많아 강제로 휴가를 보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 친구는 집에서 할 것도 없고 2주 동안 뭐하냐고 맨날 불평을 하고 있다.

회사에선 나를 비롯해서 '회사안의 미니 스타트업' 멤버 중 하나로 불리운다. ( 사실 두 명 밖에 없다 )





다른 동료로는 Server administrator인 친구가 있다.

IT 직원 답지 않게 큰 키에, 세련된 패션감각, 결정적으로 잘생겼다.

회사에서 파티를 하면 IT 팀에서 유일하게 미친 듯이 춤 추고 노래하는 캐릭터다.

가끔 금요일 오후가 되면 크게 노래 틀어놓고 소리를 지르곤 하는데 바로 옆에 앉은 팀장님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몇 년 전 까지 Support팀에서 일하다가 IT 팀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이걸 보면 사내간 부서 이동이 가능한가 보다.





면접 때 나를 옥상도 데려가 주고 실제로 나를 채용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해준 매니저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인도계 아니면 아랍계인 것 같다.

위의 Back-end Developer 동료 처럼 프랑스에서 태어났다고 하신다.

출근을 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대화할 시간이 많지는 않은데 엄청나게 평온하고 침착한 성격이다.

대화를 할 때도 조심을 하면서도 상대를 재보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은 평화의 집합체 같은 간지가 흘러넘친다.

한 번은 도대체 어떤 음악을 듣냐고 물었는데 대부분 Psytrance(싸이트랜스)를 듣는단다;;

점잖은 외모에 싸이트랜스라니 역시 사람은 외모만 보고 평가하면 안된다.

또 한 번은 종교가 이슬람이냐고 물었더니 본인은 자기가 만들어 낸 신을 믿는단다. 그렇게 하면 남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고 본인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다고 했다.

이 정도면 이 분도 보통은 아닌 듯 했다.




본부장님은 츤데레이다.

미팅이나 외부 업무로 자주 사무실을 비우는데 가끔 오는 날이면 큰 소리로 짜증을 내면서 이것 저것 불평하는데 한 30% 정도 밖에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대부분 농담이거나 시덥잖은 걸로 짜증을 내서 아무도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비자 때문에 하루 휴가를 쓰겠다고 하니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 

'헐. CDI에 프랑스 사람이랑 결혼도 했는데 매년 그걸 갱신해야하는 거야?' 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비자 갱신하는데 가서 뭐 방법이 없나 물어봐야죠' 라고 하니까

'아 됐고, 회사에 변호사 있으니까 거기다가 얘기하면 뭐 수를 내줄거야.'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또 한번은 회사에 있는 아이폰4와 아이패드로 테스트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곤 내 옆에 앉은 Back-end Developer를 나무라며

'이것만 가지고 어떻게 테스트를 하도록 내버려둔거야! 개인용 아이폰5는 왜 아직도 안 받은거야!' 라고 소리치며 어딘가로 전화하더니 한참을 싸우더라.

결국 개인용 아이폰5도 빨리 받고 애플의 모든 휴대기기는 내가 원할 때 마다 테스트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창고엔 포장도 안 뜯는 아이폰이나 맥북이 수백대가 있는데 꼭 군대 처럼 부서간의 알력이 존재하나 보다.

이 분도 게임광이여서 디아블로3가 출시됐을 땐 몇 주간 그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저번 알프스 스키 여행을 성공적으로 준비한 동료 직원이다.

과들루프라는 나라에서 온 친구인데, ( 사실 나는 이 나라 자체를 몰랐음;; ) 이 회사에서 일한지가 13 년 째 란다. 나이로 미루어 보아 이 회사가 첫 회사가 아닐까 한다.

이 친구도 한 미남해서 과거에 회사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 카더라 )

흑인인데 왠지 모르게 동네 형 같은 느낌이 강해서 의지하고 싶어진다.

처음엔 내가 불어를 못하고 이 친구도 영어를 못해서 의사소통을 전혀 안했는데 요즘 들어 내가 옹알옹알 불어로 말을 하니 농담도 해주고 사이가 좋아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 뒷자리엔 약간 멕시코 마피아 같이 생긴 친구가 있는데 어디서 본 건지 출근하는 나를 붙잡고 '한국은 정말 이래?' 라면서 한국 티비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노모쇼'였다.

그 이후로도 동아시아에 무슨 환상이 있는지 한국이나 일본의 엽기적인 영상이나 사진을 종종 보여주면서 '정말 이런거야?' 라는 질문을 한다.

자리를 비울 때 컴퓨터 잠금을 해놓지 않으면 이 친구가 바탕화면을 이상한 사진으로 교체해 버리니 보안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 외에도 많은 동료들을 알게 됐는데 프랑스는 정말 한국에 비해 나이의 격차가 적다는 걸 느꼈다. ( 없다는 건 아니다. )

또 뭐랄까 한국에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이런 분위기가 회사를 다닐 때도 약간은 있었는데 여긴 그런 느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