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온지가 벌써 일 년 반이나 됐다.
하루하루가 새롭던게 어제 같은데 이젠 반복되는 일상에 슬슬 질리는 시점인 것 같다.
올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중에 나에게 가장 큰 사건은 내가 아빠가 됐다는 것이다.
처음 와이프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축하도 많이 받고 회사 동료 직원들도 잠을 많이 자두라는 조언도 받고 갑자기 내 삶이 바뀔 줄 알았는데
잠깐 그렇게 설레이다가 두어달 지나니 '내가 아빠가 된다' 라는 생각이 '와이프가 임신해서 몸이 불편하다'라는 생각으로 바뀌더라.
9개월이란 시간이 길긴 한 것 같다. 내가 아빠가 된다는 생각을 거의 까맣게 있고 있었으니.
예정일을 2 주 정도 남겨둔 어느 날, 갑자기 와이프가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는 것이다.
영화 처럼 산모가 막 소리지르고 그러진 않더라, 우버를 부르고 차분하게 산부인과로 향했다.
임신 8개월이 돼도 입덫은 커녕 아무 진통도 없던 와이프라, 게다가 예정일 2 주전이라 그 날 출산을 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 한 채로 의사를 봤는데
의사는 너무 담담하게 '오늘 낳겠네요.' 이러는 것이다.
흥분한 나는 영어로 롸잇나우?! 를 연발했다.
새벽이라 사람도 없고 조용한 대기실에서 두시간 정도 있다가 분만실로 들어갔는데 나랑 와이프 둘만 덩그러니 있었다.
하필 와이프의 가족들은 전부 프랑스에 없거나 프랑스 남부 별장에 있었다.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출산할 때 온가족이 모이잖나. 여기도 그럴 줄 알았는데 와이프는 새벽이니까 가족들 괜히 전화해서 바로 오지도 못할 건데 깨우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와이프 곁을 지키게 됐는데 문제는 여기 의사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일년 반 있으면서 불어로 기본적인 회화는 대충하겠는데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거의 모르겠다. 나 때문에 다 영어로 하자고 할 수도 없고.
의사들이 들어와서 막 떠들면서 뭘 하면 나는 그냥 서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내 불안함을 눈치 챈 와이프는 의사들이 하는 말을 통역해주면서 출산을 했다. 결국 와이프가 출산을 하면서 내 곁을 지켰다. ( ... )
그렇게 아이를 낳고 분만실에서 입원실까지 가는데 6시간이나 기다렸다.
듣자하니 그날 출산이 많아서 엄청 바빴다고 한다.
입원실까지 안내하는 남자 간호사가 들어왔는데 양팔에 문신을 하고 덥수룩한 턱수염을 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요일 저녁 부터 나나 와이프나 잠을 못자고 꼬박 새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쌓여있었다.
집에 모카도 있고 와이프랑 아기 옷도 가지러 한 번은 가야해서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갈려고 하면 계속 간호사나 의사들이 들어와서 체크를 하는 바람에 점심 시간이 지나서야 집에 올 수 있었다. 집에 왔더니 사색이 된 모카가 나를 반겨줬다. ( 집에 절대 대소변을 안보기 때문에 매일 두 번 나가야하는데 출산 때문에 전혀 못 나감 ㅋ )
회사에 출산 소식을 알리니 출산 휴가 ( congé de naissance ) 3일을 받았다. 내가 원하면 아버지 육아 휴가 ( congé de paternité ) 11일 (주말 포함)을 바로 쓸 수 있는데, HR팀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붙여 쓰는 게 육아에 더 도움이 될 거란 조언을 받아들여 일단 3일만 쉬기로 했다. 그 외에도 원한다면 월급을 조금 차감하고 몇 개월을 더 쓸 수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낮잠을 좀 자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4일 후에 퇴원하라고 한다.
자연분만은 보통 3-4일, 제왕 절개는 4-6일 정도 병원에 입원한다고 한다.
아버지가 한국인인걸 본 의사는 와이프에게 이런 것들을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 한국 사람들은 ( 한국 사람이라고 했는지 동양 사람이라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남 ) 출산 후 병원에 너무 오래 머무르려고 하고 실제로도 프랑스에서 출산 후 더 머무를 수 없냐고 요청한다고 한다.
- 퇴원을 해서 집에 가더라도 아기가 몇 주에서 몇 달 이상 클 때 까지 절대로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
병원 복도에서 창밖의 모습
병원 복도에서 창밖의 모습
내가 알기론 프랑스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이다. 그리고 이 프랑스 공무원들의 서류작업은 악명이 높기도 유명하다. 그건 프랑스인들에게도 피해가지 않는다.
퇴원을 하는 날, 와이프는 병원에 carte vitale을 제시했다. 이건 일종의 의료보험증 같은 것이다. 이걸 가지고 있단 건 프랑스 의료보험체계 ( securite sociale )에 가입이 됐단 뜻이고, 출산은 이걸로 전부 커버가 되기 때문에 돈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런데 뜬금없이 등록이 안돼있으니 출산비 + 입원비 나흘치 해서 5000유로 ( 글을 쓰는 시점의 환률로 약 620만원 )를 내라는 것이다. 아니 무슨 외국인이 출산한 것도 아니고 프랑스인이 출산을 했는데도 이런 일이 발생을 하다니...
와이프는 한국에서 5년 정도 살았고 그 기간에는 프랑스에 세금을 안냈으니 의료보험이 우리가 프랑스로 왔을 땐 정지된 상태였다. 그래서 오자마자 정지된 걸 풀었고 그게 벌써 일 년 전 이야기였다.
근데 그게 제대로도 안됐고 제 때에도 안된 것이다.
알고보니 프랑스로 돌아온 후 의료보험 정지를 풀고 난 후 10 개월 간은 산부인과를 포함한 모든 의료 진료는 70%만 커버된다.
우리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럼 저 5000유로에서 70%를 제외한 나머지 30%만 내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병원측에선 아예 와이프가 등록이 안됐다고 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있었는데 와이프는 지불 거부를 하고 나왔다. ( 또 그럴 수가 있나보다; )
집에 와서 이리 저리 연락해서 알아보니 와이프는 정상적으로 의료보험에 등록돼있고 나머지 30%는 내 회사측에서 제공하는 일종의 사( 私 )의료보험( Mutuelle )에서 매꾼다고 했다. 결국 다 커버된거긴 한데 하루 이틀 동안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병원측에서는 의료보험측 서류작업이 잘 못 된거라고 하고 의료보험측은 병원이 잘 못 된거라고 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회사에 복귀했더니 사방에서 파파 됐다고 축하의 메세지들을 보내오더라. 샴페인도 따고 아기 용품 살 수 있는 상품권도 한 250유로 정도 주더라.
처음 며칠은 밤에 잠을 못자서 일이 힘들었는데 몇 주가 지나니 이젠 좀 적응이 된 것 같다.
내게 아이가 생겼단 자각은 있는데 내가 아빠가 됐단 자각은 아직 진행 중인 듯 하다. 가끔 아침에 일어날 때 놀란다. 가끔 한국에 있던 꿈을 꾸고 깨면 두 번 놀란다.
아 맞다! 나 지금 프랑스지!
아 맞다! 근데 나 애 생겼지!
이렇게 말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산파와 의사를 번갈아 가면서 만난다.
역시 둘 다 부모의 상태에도 엄청나게 신경을 쓴다.
특히 아기가 새벽에 심하게 울 때, 부모 둘 중 하나는 꼭 잠을 자라는 것이다. 귀마개를 하던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던. 아기가 우는데 대응을 안한다는 죄책감에 둘 다 새벽에 아기를 보면 둘 다 지치고 심하면 우울증 증세까지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기 때문에 부모의 삶이 힘들어졌다고 생각치 않게 하기 위함인것이다.
조금 있으면 위에서 말한 크리스마스 휴가와 아버지 육아 휴가를 다 합쳐서 4 주 정도 휴가를 쓴다.
이 시기에 육아에도 집중하고 피로에 지친 나도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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