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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집을 한 번 사볼까 - 2

장인어른께선 현재 은행 이자율이 이렇게 낮은 걸 평생 본 적이 없으며, 내가 은퇴할 때 쯤엔 장인어른 은퇴 시점과는 다르게 정부 노후 대책이 형편 없을 거란 말씀을 하셨다. 뭔가 한국의 상황과 묘하게 똑같아 보였다.


그래서 집을 지금 구매하는 게 노후를 생각해서라도 나은 판단이라고 하셨다.

그 외에도 왜 지금 집을 구매하는 것이 좋은 판단인지 여러 이유를 대셨고 그것들이 와이프를 설득하기엔 충분했다.


장인어른께선 일을 일사천리로 진행하신다. 바로 인터넷을 통해 몇몇 은행들에서 정보를 보시더니 이정도 금액에, 이정도 크기의 집, 상환기간은 이정도 등등 예상되는 정보들을 알려주셨다.

프랑스인인 와이프도 이런 것들은 전혀 몰랐던 상태였고 나는 뭐 더했기 때문에 거의 한 시간 동안 강의를 들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선 직원들은 위해 약간의 대출을 해준다고 전 편에서 말했는데, 그것 뿐만이 아니고 Courtier ( 일종의 중개인 )도 무료로 고용해준다.

이 중개인이 무슨 일을 하냐면 은행 대출을 받을 때 대신 딜을 해주고 관련 서류 작업들을 다 해준다.


자, 그럼 중개인도 고용했고 이제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데. 전 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나는 PTZ ( prêt à taux zéro )를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에서 집을 처음 사는 사람에게 무이자로 돈을 대출해주는 제도이다.

집을 사는 위치나 소득 수준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양이 다르다. 그리고 투기를 막기 위함인지 10 년 동안은 임대가 불가능하고 집을 10 년 안에 팔려고 하면 80000 유로 ( 한화로 천만원 정도 ) 의 돈을 내야한다.

또 다른 조건으로는, 집이 새집이거나 70% 이상 리노베이션을 하는 집의 경우만 대출이 가능하다. 대부분은 새집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이용자로 알고 있다.


고로 나는 새집을 보러다녀야한다.


이제 부턴 내 정치력에 빠져든 와이프가 실제 연락과 서류작업을 할 때다. 왜냐면 내 불어실력으론 저런 걸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새집은 immobilier ( 부동산 )이 아닌 Promoteur ( 내 생각엔 시공사?! ) 에 연락을 해야했다.

이메일을 여기저기 보냈더니 얼마 안지나서 몇 업체로 부터 연락이 왔다.

Promoteur들을 만날 수록 그랑 파리 프로젝트의 일환인지 뭔지 일드 프랑스엔 재개발 붐이 일어난 듯 보였다.


나는 회사에서 가까운 것을 일순위로 삼고 그 다음으로 동네 환경, 학교 위치, 파리로의 접근성 등등을 봤다.

한국과는 다르게 남향이라고 좋고 나쁘고 뭐 이런걸 따지진 않더라.


그렇게 일 끝나고 Promoteur 만나고 주말에도 Promoteur 만나고 한 3 주 정도를 임신한 아내와 함께 열심히 돌아댕겼다.

우리의 후보는 Pantin, Les Lilas, Romainville, Bagnolet, Montreuil 정도였다.  

그 외에도 다양한 지역을 추천 받았는데 회사에서 너무 멀거나 우리의 한도를 초과했다. 암튼 새 집이 지어지고 있는 곳은 엄청나게 많았다. ( 얼마전 중국인 살해사건이 일어난 Aubervillier를 추천하는 Promoteur도 있었다. 와이프는 내 남편 얼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고 했다. )


모델하우스 같은게 없어서 그냥 조감도 같은 거나 봐야했다.

구조가 특이한 집들도 많다. 집이 복층도 아닌데 굳이 계단이 집안에 있는 집들이 그 예이다. 집에서 내가 만취했을 시 다칠 수도 있다고 해서 그 집은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단지로 개발하는 하는 Promoteur도 만났다.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는 다르게 거의 모든 건물의 디자인이 다르더라.



최종적으로 우린 Romainville에 있는 집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20평 정도. 거실 1개, 방 2개, 화장실 2개, 12평 정도의 작은 정원 1개, 주차장 1개.

회사에서도 자전거로 10분 거리고, 파리에서도 전철로 2 - 3 정거장이고, 바로 옆에 큰 공원있고.

모든 게 딱이다.


집을 보러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게,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이민자들이 사는 일종의 슬럼가가 있다. 프랑스인들은 이걸 '게토' 또는 '시떼' 라고 불렀다.

이런 곳은 사소한 생계형 범죄부터 살인사건 까지 가능한 피하고 싶은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을 한 구역에 몰아놓고 나면 범죄율도 증가하고 사람들이 기피하는 지역이 생기며 지역격차도 심해지는 등 단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걸 프랑스 정부가 깨닫고 적정한 비율로 중산층과 섞는 방식을 택했다고 한다. ( 실제로 북유럽에서는 이 방법으로 효과를 봤다고 카더라... )

그래서 우리가 알아본 집들도 일정 비율로 이런 사람들을 받는다고 했다.

나나 와이프는 이런 정책에 찬성해서 그런지 거부감이 없는데 회사 직원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런 곳은 가능한 피한다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다. 애초에 이런 슬럼에서 자란 직원들은 다음 집은 제발 그런 곳을 피해서 구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이민자고 회사 직원들도 이민자이거나 이민자의 2세 3세인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건 확실하다.

정확히는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인데 ( 여기엔 프랑스 국민도 포함됨 ), 가만보면 꼭 이민자들만 그렇게 행동하는 듯 보도를 내보내는 미디어와 정치인들이 이 문제의 원인으로 생각된다. 이런건 참 한국과 닮았다.


암튼,

우리는 장인어른과 집을 사기로 결정한 후 약 한 달만에 집을 구매하기로 했다.

회사 직원들은 그렇게 빨리 사냐고 놀랐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으니 굳이 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엄청난 양의 서류 작업들만 남았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 후후 )

모든 서류 작업은 와이프가 했고 나는 가끔 싸인만 했다.


대충 프로세스는 이렇다.

  1. Promoteur와 집을 구매하기로 계약서 체결 
  2. 이 계약서를 중개인인 Courtier에게 내 정보가 담긴 프로필 문서들과 함께 넘기면 
  3. Courtier는 이걸 토대로 은행들과 대출에 대한 딜을 함 
  4. 딜이 성사되면 은행은 이걸 가지고 PTZ를 받음 
  5. 이 돈은 우리한테 오는 것이 아니고 바로 Promoteur에게 분할되서 지출됨 
  6. 결국 우리는 입주함과 동시에 은행에 돈을 갚기 시작하면 됨

그렇게 모든 서류를 Courtier에게 넘기고 한 2주 뒤 정도 가장 좋은 조건을 건 은행을 정해서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때 은행에서 제시한 이자율은 1%였고 정확히 뭔지 기억은 안나는데 한 달에 150유로 정도 또 정부에서 대출금 값으라고 지원을 해준다;

은행에게도 모든 조건이 괜찮으니 최종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프랑스로 이민 온 지 1 년만에 곧 아빠도 되고 집도 사다니...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게 변화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결정을 끝낸 후, 그 날 밤

나는 와이프에게 모든 게 진짜 너무 기대 이상으로 잘 돼가고 있어서 꼭 한 번은 불행한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내 인생에 그런 경우가 많아서 좋은 일이 생기면 은근히 불안해지곤 했다.

와이프는 쓸데 없는 미신 같은 거 만들어내지 말고 잠이나 자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아침에 은행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당연히 최종 계약 확인 전화이겠거니 했다.

그도 그럴게 내 이름과 직업, 계약 상태, 국적 등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와이프 표정이 안좋았다.

와이프는 잠시 후 전화를 끊고 집 사는 게 다 수포로 돌아갔다고 했다.


문제는 나의 1년 짜리 비자였다. 

이 비자는 은행에서 대출할 때 안받아주는 비자라는 것이다. 대출은 10년 이상 비자만 받는단다.

그럼 이걸 왜 집을 사기로 한지 한 달 반이나 지난 시점에서... 최종 계약 직전에 확인한단 말인가.

최초 내 프로필을 받은 Courtier 부터 Promoteur와 내 프로필을 심사하고 좋은 조건까지 제안한 은행까지...

이 프로페셔널한 세 군데에서 아무도 내 신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단 말인가.


우린 또 프랑스 서류작업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또 한가지 문제는 우리의 상태는 Promoteur와 집을 사기위해 어떤 계약을 한 상태이다.

이 계약은 집을 사기 위해 은행 대출을 요청하고 우리가 그 대출을 받을 시 무조건 계약서 대로 집을 구매해야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빼박캔트다.

플러스로, 우리는 최소 두 군데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단 걸 증명해야하고, 두 은행 모두가 우리의 대출신청을 거부했을 시, Promoteur측에서 우리가 변심으로 인해 은행과 짜고 일부러 대출신청을 거부하도록 했다는 의심이 들면, Promoteur에서 Courtier를 고용해 대출신청을 다시 진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걸 어기면 8000유로를 그냥 꽁으로 내야하는 것이다.

우린 현재 Courtier를 통해 한 군데만 지원을 한 상태였다. 급하게 다른 은행에 지원을 우리가 직접 해봤고 결과는 역시 내 비자 문제로 탈락됐다.

거의 동시에 아기도 태어나서 처리해야할 서류 작업은 몇 배로 늘어났다.


기쁘면서 피곤하고 우울한 복합적인 기분의 나날을 보냈다.


회사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결혼도 프랑스 사람이랑 하고 회사도 프랑스 회사고 아이까지 프랑스에서 낳았는데 은행에서 거절하다니 이게 다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갑자기 정치얘기를 시작했고 결국 내 이야긴 논점에서 제외돼 버렸다;;


내 비자를 10년 짜리로 만들어야 비로소 프랑스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걸 받으려면 최소 2 - 3년은 걸릴테고, 내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이 PTZ 제도는 2017년이 마지막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 나라 은행들이 싼 금리로 돈을 풀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2017년 초 부터 끝날 거란 예측들이 나오고 있다.

이 기회의 막차를 놓친 기분이다.


요즘도 가끔씩 Promoteur로 부터 연락이 온다. 좋은 집들 많다고. 와이프는 바로 내 남편은 1년 짜리 비자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럼 Promoteur도 아 그러시구나...하고 끊는다.

얼마전 이야기를 나눴던 알제리계 우버 기사님은 10 년 전에 본인이 1 년 짜리 비자를 가지고 있음에도 대출이 가능했는데 이젠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도 안다 지금 프랑스로 이민와서 직장 얻고 아기 낳고 잘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내겐 기적적인 일인데 집 사는 거 하나 무산됐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그런데 애초에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이제는 집을 좀 샀으면 좋겠다란 생각으로 몇 달만에 바뀌었고, 한 번 거절되니 더 간절해지는 것 같다.

일단 다른 방법은 없으니 시간을 가지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른 가능성들을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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