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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취업, 회사 이야기

재택근무

작년에 회사가 파리 밖으로 이사간 탓인가 이사간지 두어 달 지나서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사람은 하라는 이메일이 왔다.

이사전에도 재택근무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특정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나 해당된 이야기였다. 예로 우리팀 개발자중에 한 명은 원래 허리가 안 좋았는데 스쿠터를 타다가 넘어져서 더 악화된데다 집 까지 멀어서 ( 약 1시간 반 거리 ) 종종 재택근무를 한다고 들었다.

재택근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IT팀이 모였다.


본부장 : 할 사람?

개발자 1 : 저요. 일주일에 4일 할게요.

나 : (속으로) 헐.

개발자 2 : 그건 너무 심하잖아. 3일만 해.

나 : (속으로) 아니, 3일도 좀 많지 않나;

개발자 3 : 난 안 해. 집에 있으면 산만함.

본부장 : 난 다 좋은데 최소한 회사에 개발자 2 명은 있어라. 긴급한 일 있으면 바로 처리할 수 있게.

나 : (속으로) 우린 4 명인데 개발자 1이 3일을 쓰면 나랑 개발자 2랑 나눠서 써야겠네...


개발자 1이 다른 동료 생각 안하고 처음 부터 4일이라고 발언한 것에 좀 놀라긴 했지만 여긴 한국이 아닌 프랑스니까 그럴 수도 있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개발자 2는 재택근무를 전사차원에서 하는 건 처음이니까 일단 일주일에 하루씩만 해보고 적응되면 나중에 서서히 바꾸자고 했다. (개발자 1은 예외. 여전히 3일. 프리랜서 보다 더 출근을 안해서 왠지 더 프리랜서 같은 느낌.)


듣자하니 다른팀은 아예 안하거나 업무 특성상 못하는 팀들도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서포트팀은 직원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나 회사용 폰 등등 여러가지를 직접 받아서 고치고 관리하는 팀이라 무조건 와야함)


여튼 그렇게 해서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처음 한 달 정도는 집에서 일을 하니까 집중이 참 안됐다. 일을 하는 책상도 회사의 것이 훨씬 좋고 식사 커피 등등 모든 시설이 회사에 가는 편이 더 좋았다.

오직 좋은 건 아침에 출퇴근으로 잃는 하루 2시간을 얻은 것이다. 9시 시작해서 오후 6시에 끝나면 바로 자유의 몸이 되니 약속을 잡거나 뭘 하려고 해도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문제점으로 남은 것은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회사내에서 사용하는 메신져가 있는데 이게 종종 메세지 전달이 안되거나 (명색이 메신져인데...) 모바일 앱이랑 컴퓨터 앱의 대화 히스토리가 공유가 안된다던지 파일이 안가진다던지 등등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동료들과는 다른 메신져를 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그렇게 한 달을 넘기고 나니 집중이 안되고 산만해지는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이 되더라.

난 침대 위에서 이렇게 코딩이 잘되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한국 같았으면 주변에 한적하고 인테리어도 잘된 커피숍에 가서 일을 할텐데 여기선 컴퓨터 도난의 문제도 있고 썩 그렇게 커피숍이 편하지도 않아서 집이나(침대) 마당에서 일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선 회사에 얘기해서 재택근무 일 수를 하루 더 늘렸다.

내가 집에 있으면 와이프가 여러모로 편해서 그렇게 했다.

일하다가도 잠깐 같이 나가서 장을 볼 수도 있고 각종 집안일을 할 때, 한 명이 아이를 보고 다른 한 명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서 이렇게 일을 하다보니 점점 오전 9시 - 오후 6시 칼퇴근을 안하게 되고 오히려 점점 더 많이 일하는 나를 발견했다.

집에서 일을 하는 버릇을 들여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의식적으로 6시가 되면 컴퓨터를 끌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주일에 2 일 씩 재택을 하다보니 운 좋게도 아이가 처음으로 소리내서 웃는 걸 집에서 볼 수 있었다.

내가 회사를 매일 나갔으면 아이에 대해 놓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느끼고 볼 수 있어서 이 점이 특히 좋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동남아시아나 남유럽으로 휴가를 가서 휴가지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누군가는 끔찍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ㅎㅎ